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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전형철의 ‘성변측후 단자(星變測候 單子) 2’ 해설

  • 입력 2020.05.1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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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변측후 단자(星變測候 單子) 2 / 전형철

-단자론(monadology)

 

  순치 18년 정월 13일 계해(癸亥) 밤 5경 혜성이 동쪽 하늘의 우수(牛宿)에 속한 하고성(河鼓星)에 나타났다

  염소의 머리를 하고 물고기의 모습을 한 별이 기수(汽水)에 떨어졌다 소격서의 제조가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고 제를 올렸으나 주위의 촛불들이 하나둘씩 꺼졌다 나라에 빛이 사라진 첫날이었고 상(上)은 군(君) 항(行)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변고에 대비하였다

  혜성이 하고성의 소성(小星) 가까이로 조금씩 이동하였다*

  낮부터 취중에 귀뚜라미들이 허공을 채웠다 솔(蟀)의 무리가 지나는 자리마다 백성의 귀는 난(亂) 중의 벽서처럼 도성에 출몰하였다 사람의 소리가 아닌 것들이 사대문의 담을 넘었고 선비를 살찌우는 비유어(肥儒魚)들이 개천을 거슬러 삼각에 닿았다 구우(久雨) 지나 건들장마에 이무기가 상의 눈썹으로 흘러들어 파천한 상은 자주 꿈에서 깨어났다

  꼬리의 길이는 2척 조금 넘고, 꼬리의 자취는 하고성의 중대성(中大星)에 미쳤다*

  상은 소(疎)에 위아래를 두지 않았으나 금시에 행간의 의미를 살피고자 했다 기작과 모작을 구분했고 복지지리(復之之理)의 성변을 일월로 치환하였다 마침 죽은 군대의 장군이 두 개의 단자를 올려 후인의 매무새를 급박히 알려왔으나 서쪽 각수(角宿) 거성의 변고를 미처 알지 못하였다

  혜성의 성체는 하고소성에서 점점 어두워졌다 북극과의 거리는 82도였다*

  아침 어상(御床) 수라에 팔도의 귀와 입이 배설되었다 상의 정수리에 주름이 늘었고 단자의 배후에 성의(聖意)가 미쳤다 상의 선택이 무리의 기미를 보였기에 자오선 위에 배열된 별의 문장이 왕조의 문양을 붉게 물들였다

  상은 그만 무렴자를 내렸다

  달빛이 밝고 또 새벽이 밝아오기 때문에 혜성의 형체가 매우 희미하였으며 꼬리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하고성(河鼓星)의 중성인 견우성이 남쪽으로 이동할 듯하자 날이 밝아왔다 수지(手指)로 관측할 수 있는 법인데 빛이 밝아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여 관측할 수 없었다

  천문학 교수 송인용(宋仁龍)
  전 관상감 정 황효공(黃孝恭)
  광홍창 주부 송이영(宋以潁)
  홍문관 부수찬 김만기(金萬基)*

  후(後)의 학문이 전대의 기록으로는 설명될 수 없었다 소리로 적었으나 뜻으로 거세했으며 알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를 수 있는 것 같기도 한 것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말하지 않음으로 깊었고 모름으로 앎을 칭송했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단자의 구멍 사이로 멸실된 시간들이 익수(溺水)의 세간(世間)을 건너왔다
  상의 관상감 측후(測候)와 각루(刻漏)는 수(數)와 괘(卦)로 남아
  죽은 장군의 대로(大路)에 가로등을 이루었다
  천행이었다
  천운이 아니었다

  빛이 너무 밝아서 소멸되었을 것 같으나 분명히 알 수는 없었다*

 

*1661211(현종 2113) 성변등록(星變謄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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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세상에 시가 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역사서에 기록된 단어 몇 개도 훌륭한 예술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성변등록」은 조선시대 관상감의 학자들이 천문기상현상을 기록한 역사서입니다. 시인은 혜성이 출몰했다는 일지형 역사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 더 나아가 우주로까지 상상의 폭을 확장했습니다. 밤하늘에 별 하나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사이, 그것을 둘러싸고 이어지는 인간의 고뇌가 고풍스러운 문장 속에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건조한 역사서의 짧은 기록에 숨을 불어 넣어, 한 편의 빛나는 예술품으로 빚어낸 시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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