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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예강의 ‘정원의 세계’ 해설

  • 입력 2020.06.0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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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세계 / 김예강

 

정원을 걸어 나온다

 

오전의 장례미사는 슬퍼졌다가 슬프지 않았다

 

반쯤 햇살이 내려앉고

반쯤 그늘진 곳에서

 

마지막 골목을 걸어 나온다

햇살과 그늘이 시간의 반을 가지는 곳에서

 

지나간 시간에게 지금의 시간을 내준다

 

망각을 만나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히고 팔을 뻗어보는 식물들

 

나뭇가지 사이 나뭇가지

그늘진 곳으로 어느새 어디선가

검고 긴 머리칼을 내리는 당신의 손들

 

아직 피어있구나

 

난 늘 그래

기억은 그래

맨 마지막까지 피어있는 꽃이라고 너는 그랬다

 

우리는 식물이 될 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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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삶과 죽음을 동물성과 식물성으로 구분한다는 것이 낯설면서도 신선합니다. 보통은 죽음을 소멸로 인식하거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인식하기 때문이지요.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된다는 개념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식물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은 꽤 새롭습니다. 요즘은 수목장을 하는 경우도 많아서 그렇게 인식할 수 있겠다 싶기는 합니다. 죽음이 소멸이 아니라 식물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라면, 나무가 되어 머리카락 같은 긴 그림자를 땅에 드리우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듯 나뭇잎으로 내 그림자를 쓸어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가끔은 문자 그대로 꽃단장을 할 수도 있겠네요. 작가의 말대로, 어쩌면 죽음이란 소멸이 아니라 식물이 되어 정원의 세계로 옮겨가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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