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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사회·세계
  • 기자명 이수한

[원적] 대한불교조계종 제6대, 제7대 원로회의 의장 혜광당 종산대종사 종단장

  • 입력 2020.06.2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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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圓 寂]曹溪宗 第6代, 第7代 元老議長 慧光堂 宗山大宗師 宗團葬

혜광당 종산대종사 (사진=조계종)
혜광당 종산대종사 (사진=조계종)

[내외일보] 이수한 기자 =

圓 寂

曹溪宗 第6代, 第7代 元老議長 慧光堂 宗山大宗師 宗團葬

大韓佛敎曹溪宗 第6代, 第7代 元老會議 議長을 歷任하신 華嚴寺 祖室 慧光堂 宗山大宗師께서 世緣을 다 하시어 佛紀2564(2020)年 6月 23日(陰 5月 3日) 午前 5時 30分 淸州 菩薩寺에서 法臘 72年, 歲壽 97歲로 圓寂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門徒代表 明煽 合掌

□ 焚 香 所 : 智異山 華嚴寺 華嚴院

□ 永訣日時 : 佛紀2564(2020)年 6月 27日(陰 5月 7日) 午前 10時

□ 永訣式場 : 智異山 華嚴寺

□ 茶 毘 場 : 智異山 華嚴寺 蓮花臺

□ 連 絡 處 : 智異山 華嚴寺 (061)783-7600

大韓佛敎曹溪宗 第6代, 第7代 元老議長 慧光堂 宗山大宗師 宗團葬 葬儀委員會

 

대한불교조계종 제6대, 제7대 원로회의 의장 혜광당 종산대종사 행장

대종사께서는 1924년 10월 전남 담양에서 출생하셨으며, 속명은 김동진입니다. 법호는 혜광, 법명은 종산을 받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광주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절친한 벗이 병고로 세상을 일찍 떠나자 육신을 치료하는 의사보다는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되기를 결심하고 1949년 2월 자운사에서 도광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1954년 3월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1953년 전남 강진 백련사 만덕선원에서 전강 대선사를 모시고 수선안거 이래 43여년간 대흥사, 통도사, 해인사, 범어사, 동화사, 망월사, 천축사 무문관, 용주사 중앙선원 등 전국 선원을 돌며 수행정진 하셨습니다. 대강백 용봉스님에게서 경전을 보았고, 당대 선지식으로 추앙받은 전강스님으로부터 선을 담았으며, 동산스님, 경봉스님, 춘성스님, 금봉스님, 청담스님 등 한국불교 최고의 선지식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함께 수행정진을 하셨습니다.

동산스님을 조실로 모시던 범어사 정진 시절에는 도반 3명과 함께 눕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용맹정진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몰려오는 잠을 어쩌지 못하자 널빤지에 못을 박아 앞에 세워놓고 수행하던 중, 20여 일이 지나 문득 도반의 이마를 보았더니, 긁히고 찔리고, 심지어 피가 군데군데 엉겨 붙어있던 도반의 얼굴을 통해 한편으로는 기가 막히고 다른 한편으로 그 치열한 열정을 보면서 ‘나는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가!’ 깊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스님들 중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이 없고,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나보다 더 공부를 못한 사람이 없다’는 마음자세를 평생의 경책으로 삼았습니다. 마음 어딘가 깔려있던 대학 공부까지 했다는 자만심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대분심·대의정·대발심으로 일으켜 몇 번의 용맹정진과 천축사 무문관의 6년 수행 끝에 깨달음을 이루고 문이 없는 방의 벽을 걷어차고 세상으로 나오셨습니다.

合掌以爲花(합장이위화) 身爲供養具(신위공양구)

두 손 모아 합장으로써 꽃을 만들고, 청정한 몸으로 공양구를 삼나이다.

誠心眞實相(성심진실상) 讚嘆香煙覆(찬탄향연복)

성심을 다 받치는 진실한 모습으로, 찬탄의 향기를 가득 채우겠나이다.

해인사에서 정진하던 1958년 어느 날, 조실 금봉스님께서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고 ‘선방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금봉스님은 ‘선(禪)! 선(禪)! 어떤 것이 선이냐?’고 외치더니 염주를 들어 보이셨고, 스님께서는 ‘진심(眞心)이 선입니다’고 답했습니다. 금봉스님은 한참 선문답을 하시고 ‘보장록’을 주시면서 ‘혜광(慧光)’이라는 법호를 내려 주셨습니다.

금봉스님께 법호를 받은 이후에도 깨닫고자 하는 마음 있으면 모든 것이 즐거움이라 하시면서 일평생을 ‘여하시부모미생전 본래면목(如何是父母未生前 本來面目)’, 즉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라는 화두를 챙기시며 수행정진에 게으르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후학들에게 ‘계율을 머리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먼저 내 허물을 보고 참회하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계율은 목숨처럼 여겨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망상을 버리고, 수행정진해야 한다. 수행이 안 되고, 반야지(般若智)를 열지 못하면 시비(是非)가 일어난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용맹정진하면 반야의 지혜가 열리고 그 지혜를 지닌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장의 불만불평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대종사께서는 산승은 산중에 살며 계정해 삼학을 지키며 사는 것이 본분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종단의 어떤 소임도 맡지를 않고 조용히 수행에만 전념하셨으나 모든 중생과 출가수행자들도 자신이 처한 당대의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출가 수행자는 내적으로 깨달음을 이루려는 성불자적 태도와 밖으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포교자, 전법자로서의 역할이 기본이므로 깨달음과 포교의 양륜을 굴리기 위해 국민과 불자, 후학들에게 이시대의 불교가 진정한 가르침을 줄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 소임을 맡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1988년 중앙종회 임시의장, 법제분과위원장을 역임하셨고, 1990년 보살사 직지선원 조실, 2000년 4월 천은사 방장선원 조실, 2002년 10월 구산선문 태안사 원각선원 조실, 2012년 1월 화엄사 선등선원 조실로 추대되었습니다. 1997년 12월 조계종 최고 의결기구인 원로회의 의원으로 선출되신 후 2004년 해인사에서 대종사 법계를 품수 받으셨고, 2004년 4월 제6대 원로회의 의장, 2007년 12월 제7대 원로회의 의장으로 추대되어 종단의 위계질서를 세우셨고, 승풍을 진작하셨으며, 불교 수행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재가자들에게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는 건강한 종단을 만드는데 일조하셨습니다.

대종사께서는 2020년 6월 23일 오전 5시 30분 충북 청주 보살사 직지선원에서

忽然惺時在夢中(홀연성시재몽중) 今日頓覺羞恥麽(금일돈각수치마)

了知柱草心印華(요지주초심인화) 不拘廉恥又欲見(불구염치우욕견)

문득 깨어보니 이번에도 잠깐 졸았구나. 부끄럽게도 왜 지금에서만 아는가!

다행히 기둥에 난 풀도 사람마음 꽃인걸 알아서 염치없지만 또 보고 싶겠네!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법납 72세, 세수 97세로 세연을 다하시고 엄연히 천화하셨습니다.

 

[수행일화]

◯ 법문을 하지 않게 된 일화

큰스님께서는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스님을 조실로, 구하스님을 모시고 입승 소임을 보고 있을 때에 해제를 3일 앞두고 경봉스님이 대중 방에 와서는 “해제법문은 입승이 해라” 한마디 남기고 가버리셨습다. 극구사양했지만 경봉스님은 “두말하지 않는다”고 잘라버려서 결국 해제날 큰스님이 법석에 올랐다. 그리고 몇 일 후 한 스님이 “스님은 수행하려고 이곳에 왔습니까, 조실 인가를 받으러 이곳에 왔습니까” 하며 시비 섞인 질문을 받고 ‘참 어리석은 일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걸망을 싸서 해인사로 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법석에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후 법문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 범어사 대못수행

대종사께서는 제방선원을 비롯해 천축사 무문관에서 정진하는 등 평생을 화두일념으로 수행해온 선승(禪僧)이다. 동산(東山)스님이 범어사에서 조실로 후학들을 지도할 때 도반들과 함께 ‘피나는 정진’을 했다. 당시 스님은 도반들과 함께 “깨닫지 못하면 밖에 나가지 말자”며 결의를 맺었다. 자세가 흐트러지고 수마(睡魔)가 찾아오면 서로 죽비를 내리면서 경책하고 정진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상대방이 졸고 있는지 아닌지 신경이 쓰입디다.” 그래서 묘안을 생각해 냈다. 널판지에 못을 박아 뾰족한 끝이 1cm 정도 나오게 한 것을 앞에다 세워놓은 것이다. 옷도 모두 벗고 벌거벋은채 가부좌를 하고 정진을 했다. 잠시 졸기라도 하면 이마에 못이 찔리는 것은 명약관화. 그렇게 20일 정도의 시일이 지났다. 도반을 보니 이마가 엉망이었다. 피가 나고 긁히고, 심지어 피가 흘러 엉겨 붙어있었던 것이다. “그걸 보니까 기가 막혔어요. 참으로 저 스님은 피가 흘러도 개의치 않고 정진하는데, 나는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스님은 그때 “나도 여기서 꼭 깨달아 나가야 겠다”는 대분심, 대의정, 대발심이 일어났다. 그런 과정을 몇 번 거치고 장좌불와와 용맹정진을 하고 나니, 스님은 “정진 말고는 다른 것 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수행자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정진수행이라는 것이다. 그 뒤로 스님은 해인사, 통도사 극락암, 용주사 중앙선원 등에서 입승을 보며 더욱 정진에 매진했다. 또 천축사 무문관에서 6년 결사에 동참하기도 했다. “정진을 하면 사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아주 편안하고. 지금도 그때 정진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아요”

◯ 일종식

젊은 수좌시절 금봉스님이 해인사 조실로 온다는 소식을 들은 스님은 해인사로 향했다. 반가운 마음에 아침 공양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대구까지 왔다. “시장기가 돌더라고요. 칼국수 집을 찾아 나섰는데, 어느 음식점 골목에 들어섰다. 그런데 갑자기 ‘불고기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계율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그날따라 그 냄새가 얼마나 좋던지 저도 깜짝 놀랐다.” 스님은 자문자답(自問自答)을 했다고 한다. “평소 네가 그런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정진을 했는데 오늘따라 고기 냄새가 좋으냐. 만약 고기를 준다면 먹겠느냐” “…” 내면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님은 다시 자문자답했다. “만약 저 고기가 전생의 너의 어머니라 한다면 네가 먹겠느냐. 그것도 전생의 어머니가 못된 중생들에 의해서 살생을 당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예리한 칼로 살을 베어 뜨거운 불에 굽고 있는데 그래도 먹겠느냐.” 스님은 그렇게 ‘불고기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고 솔직한 경험을 밝혔다. 스님은 그 뒤로 지금까지 오신채를 먹지 않는 등 청정계율을 지켜왔다.

◯ 출가동기

나라가 어렵던 시절 부모님을 잘 만나서 넉넉한 생활을 하며 의과대학에 다녔습니다. 대학시절 형제처럼 지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폐병에 걸려 그만 세상을 일찍 떠났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팠고 힘들었습니다. 49재를 지내려고 강진 만덕선원에 갔는데 그곳에는 동산 스님과 전강 스님, 선월 스님, 도천 스님 등이 함께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전각에서 들려오는 스님들의 염불 소리가 천상의 소리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마음이 정말 편해졌습니다. 스님들 모습과 말씀에 반했습니다. 이 세상에 스님과 같은 마음만 갖는다면 모든 악이 물러가고 선한 세상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은사로 모신 도광 스님도 거기서 만났습니다. 도광 스님을 친견한 뒤 출가가 나의 길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그것이 불연(佛緣)의 시작이었습니다. 친구 49재 때문에 찾은 절에서 육신을 치료하는 의사보다 마음을 다스리고 치료하는 불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의사가 되기를 원했던 부모의 상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스님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출가를 해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불효자가 되었지만 새벽 예불 때마다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발원드리고 있습니다.

[큰스님 어록 모음]

◯ “소크라테스는 참다운 사람을 찾기 위해 대낮에 공원에서 등불을 가지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는 한평생 나보다 못한 사람을 찾아볼 수 있기를 원했지만 아직까지 그런 사람을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사람조차 만나지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존경합니다.”

◯ “인간사, 세상사 모든 일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당신과 관계를 맺고 사는 우리 가족, 우리 친구, 우리 이웃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물론 그 인연의 한가운데 당신이 서 있다. 당신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도 다름아닌 더불어 함께 함 속에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 “남의 흠을 보지 마세요. 항상 자신의 흠을 먼저 봐야합니다. 남의 흠을 먼저 보고 자신을 나중에 돌아보니 세상시비가 끊이지 않습니다.”

◯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떠난 소욕지족(少慾知足)의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조고각하(照顧脚下)란 말이 상징하듯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만족하고 끊임없이 수행할 때 행복은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 “기가 막힌 모습이었어요. 한편으로 그 치열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가 돌아보게 됐습니다. 이 세상 모든 스님들 중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이 없고,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나보다 더 공부를 못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마음 어딘가 깔려있던, 대학 공부까지 했다는 자만심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대분심·대의정·대발심이 일어났어요.”

◯ “선남자, 선여인이여. 당신께서 어떤 문제로 인하여 고통과 불편함이 지속된다면 먼저 그 ‘문제의 일어남’에 대해 잠시 사유해 보기 바랍니다. 왜? 무엇 때문에? 어째서?… 이렇게 계속 반복하면 거기 끝에는 반드시 ‘나’에 대한 탐욕과 혐오, 미혹함이 있습니다. 이것이 불편과 고통을 소멸시키는 제일차 작업입니다.”

◯ “하루에 5분이라도 참선을 해야 합니다. 24시간 가운데 하루 30분만 수행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이 옵니다. 백천만겁을 윤회하는 가운데 사람 몸 받기가 가장 힘이 듭니다. 대통령이 되거나 고시에 합격하는 일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법을 만나는 인연에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다행히 사람 몸을 받은 지금, 정법을 찾아 부지런히 정진하기 바랍니다. 아무리 바쁜 일상이라도 하루 5분 이상 명상하는 습관을 가지길 바랍니다.”

◯ “불교 수행을 흔히 정혜쌍수(定慧雙修)를 닦는다고 하지요. 중요한 것이 빠져있어요. 계율을 지켜야 정혜를 수월하게 닦을 수 있습니다. 계율은 특히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것이예요. 부처님의 말씀은 무상(無上, 더없이 높고)하고 무변(無邊, 끝이 없으며)하며 무심(無深, 끝없이 깊다)한 것으로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거스르는 것은 곧 배불입니다. 계율을 모르고, 따르지 않는다면 곧 배불하는 사람이니, 이런 사람이 정혜를 올곧게 닦을 수 있겠습니까. 계율을 따르면 수행이 더 잘 됩니다. 수행을 하려는 사람들은 마땅히 계정혜 삼학을 수행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더없이 높고

끝이 없으며 끝없이 깊은 것으로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행·사치 버리고 ‘참사람 길’ 걸으세요.“

◯ 스님은 즉답(卽答) 대신 동자승 인형을 들어 보였다. 귀를 막은 동자승, 입을 가린 동자승, 눈을 가린 동자승 등 세 개였다. 한참동안 말문을 열지 않은 스님은 “전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라며 까닭을 설명했다. “그른 것을 보지 않고, 그른 말을 듣지 않고,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삽니다. 불자들도 언제나 좋은 말을 하고, 좋은 말을 듣고, 좋은 것을 보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의 허물을 보는 대신 바로 자신의 허물을 먼저 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백천만겁을 윤회하는 가운데 ‘난득(難得) 난득(難得)’ 이라해도 사람 몸 받기 가장 어렵다”고 지적한 스님은 “대통령이 되거나 고시에 합격하는 일이 아무리 어렵다해도 사람으로 세상에 오는 것만큼 힘들지는 않다”면서 “어려운 과정을 거쳐 사람 몸을 받았더라도, 불법(佛法)을 만나고, 정법(正法)을 만나며, 나아가 종사(宗師)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우리가 사람 몸을 받았을 때 정법을 찾아서 정진하면, 그 속에는 평화와 안정이 일어나고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 “물질과학이 고도로 발달됐지만 아직 평화는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곳곳에서 시(是)와 비(非)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정진해서 ‘반야’의 지혜가 열리고, 그 지혜를 지닌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불만불평이 없어집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무엇을 만들려고 하면 시비가 일어나게 됩니다. 물질로 해결하지 못한 세상사를 푸는 길은 우리 모두 정진해서 지혜를 여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용맹정진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무서울 만큼 공부를 해도 망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지금 사회나 우리 승단은 시비를 일삼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정진해야할 분들이 ‘시’와 ‘비’를 일으키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출가한 스님들은 망상을 버리고, 정진 수행해야 한다. 수행이 안 되고, 반야지(般若智)를 못 열면 시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입’은 달다 쓰다 맵다 등 맛을 분별하기 때문에 중생의 세계라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음식물이 ‘위’에 들어가면 상관이 없습니다. 고비를 넘기는 수행을 통해 ‘반야지’를 열면 음식이 위에 들어가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처럼 될 수 있습니다.”

◯ “탐진치 삼독을 떠난 소욕지족의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조고각하란 말이 상징하듯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만족하고 끊임없이 공부할 때 행복은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혼자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와 남, 나와 다른 세계는 늘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행복을 소유하고 싶으신 국민이나 불자여러분들은 자신의 마음을 살수 있는 가장 행복한 공부를 매일매일 일상에서 행해야 합니다.”

◯ “참선수행해서 반야지혜가 열리면 하지 말라고 해도 좋은 일을 하고, 가지 말라고 해도 좋은 길로 갑니다. 그래서 깨달아야 합니다. 과학으로 한다고 해도 못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정진 참선수행해서 깨달아서 깨달은 마음을 모아야 세상이 평화가 되고 행복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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