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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이강하의 ‘폭우’ 해설

  • 입력 2020.08.1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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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 이강하

 

  비를 뒤집어쓴 길이 헝클어져 발목에 닿았어요 무거운 빗소리에 길이 자꾸 쿨렁거렸어요 잠수교는 이미 잠겼고 자전거도로로 휘어진 길이 넘쳐 오르는데 뱀이 오고 있었어요 엉킨 길을 잘라먹으며 헤엄쳐오고 있었어요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빤히 보면서 말이지요 순간 등에서 소름이 쫙 돋았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아! 저 길을 어떻게 가져오지? 불현듯 엄마 얼굴이 스쳐 지나갔어요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는데 말이지요 길이 사라지기 전에 우체국에 도착해야 하는데 점점 빗소리는 거세졌어요 장우산으로 물을 탁탁 때리며 길을 잡아당겼어요 뱀이 따라올까 봐 소리소리 지르면서 말이지요 그날처럼 뱀이 무서운 것은 난생 처음이었어요 근래엔 작은 뱀도 무섭잖아요 오빠의 슬리퍼를 신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을까요

 

  우체국에 도착하니 뱀이 뱉은 길들이 슬리퍼에 다닥다닥 붙어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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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기나긴 장마가 끝나고 오랜만에 해가 나왔습니다. 열흘 넘게 잠겨있던 잠수교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뉴스가 더없이 반가운 요즘입니다. 얼마 전, 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었습니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비를 뒤집어 쓴 길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습니다. 한강 다리를 지날 때는 혹시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등에서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꿈틀거리며 도로 위를 흘러가는 물줄기가 차를 확 덮칠 것만 같았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도로는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빤히 보는 뱀 그 자체였습니다. 불안과 공포를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인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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