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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고재홍 기자

[칼럼] 이매창李梅窓과 이매창李梅窓

  • 입력 2020.09.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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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일보=호남]고재홍 기자=“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여라.” 전북 부안이 낳은 여류시인 이매창李梅窓(1573-1610) 대표 시조다. 그러나 강원도에서는 약간 앞선 동시대 동명이인 이매창李梅窓(1529-92)이 유명하다. 전북에서는 ‘생거부안生居扶安·사거순창死居淳昌’이 유명하나 수도권·충청지역에서는 ‘생거진천鎭川·사거용인龍仁’이란 말이 유명한 것과 비슷하다.

이매창은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51) 맏딸이다. 조선 4대 여류시인 중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사대부 출신이나 황진이와 부안 이매창은 기녀 출신이다. 신사임당은 신명화와 용인이씨 다섯 딸 중 둘째로 강릉 북평촌 오죽헌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율곡 이이(1536-84)를 낳은 장소이기도 하다. 사임당은 남성 중심 철저한 봉건사회에서 금서시화琴書詩畵 토대를 닦고 덕수 이씨 이원수에 출가했다. 시댁 본거지인 파주 율곡리와 시댁인 서울을 오가며 친정 모친 때문에 강릉에 살기도 했으며 남편을 따라 평창군 봉평에 살기도 했다. 구도와 배색, 세밀한 필치 등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는 그림 등 다방면에 탁월했던 신사임당과 슬하 4남3녀 중 셋째 아들 율곡 이이는 각각 최고액권인 5만원 권과 5천원 권에 활용될 정도로 유명하다. ‘신사임당’과 이황과 함께 대학자로 서인 거두인 ‘이이’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이가 율곡 큰 누이 ‘이매창’과 남동생 ‘이우’다.

율곡이 모친 지성을 물려받아 대학자로 성장해 신사임당을 현모양처 대명사로 부상시켰다면, 신사임당 맏딸 매창과 넷째아들 이우는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았다. 이우는 거문고·글씨·시·그림에 뛰어난 금서시화琴書詩畵로 ‘사절四絶’이라 칭송받았다. 사임당 화풍과 닮아 식물과 곤충을 잘 그려 그가 풀벌레를 그린 종이를 던지자 닭이 진짜인 줄 알고 쪼았다고 한다.

매창도 안목과 식견이 탁월해 남동생 율곡이 국가 중대사에 자문을 구할 정도였다. 병조판서 율곡이 계미년(1583) 북방변란 때 군량 부족을 걱정하자 매창은 “재주 있는 서얼이 폐고廢錮(앞길이 닫히고 막힘)된 지 백년이 넘어 울분을 품으니 곡식을 납입케 하고 벼슬길을 열어주면 군량을 쉽게 마련할 것”이라고 해 율곡이 시행해 큰 효과를 봤다. 매창은 남편인 충청관찰사를 지낸 조대남(1530-86) 묘지명에 “여사는 경전과 사기史記에도 달통해 사리가 밝아 율곡이 의심나는 대소사를 여사에 자주 자문했다.”고 기록됐다. “매창은 ‘부녀 중 군자’로 모친(사임당) 교훈을 받들어 규범을 따르고 재주와 학식이 탁월해 깊은 지혜와 원리를 가졌다. 수백 년 뒤 필적을 보니 시의 운치는 청신하며 그림 솜씨는 정교해 ‘이 어머니에 이 딸이 있다.’”고 기록됐다. 매창은 금서시화에 뛰어나 ‘여중군자女中君子’에 ‘작은 사임당’으로 칭송됐다. 작품으로 강원도유형문화재인 월매도가 오죽헌박물관에 소장됐고, 연매烟梅(연무 속의 매화) 등 매화를 자주 그렸다. 사계화조도四季花鳥圖는 참새·기러기 등을 계절별로 그렸다.

파주시 자운서원 내 이원수와 신사임당 합장묘, 율곡 이이 부부 묘와 그의 가족 묘원이 있는데 국가사적이다. 임란 때 아들 둘과 함께 왜병에 죽임을 당한 이매창과 조대남 묘는 물론 매창 시부모 조건과 이씨 부인 합장묘도 있다. 이씨와 조씨 집안 깊은 유대감이 엿볼 수 있다.

부안이 낳은 이매창도 조선 선조·광해군 때 시로서 명성을 날린 명기다. 황진이·허난설헌과 함께 당대 3대 여류시인이던 매창은 1573년 부안 아전 이탕종 딸로 태어났다. 기녀가 된 직후, 진사 서우관 사랑을 따라 한양에서 3년 정도 머물렀다. 부안에 내려온 직후, 천민 출신으로 인품이 출중하고 시에 밝았던 촌은 유희경(1545-1636)과 깊은 사랑을 남긴다. “그대 집은 부안에 있고 나는 한양에 사니/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고/오동나무 비 뿌릴 때 창자가 끊겨라.”는 유희경이 매창을 그리워하며 남긴 시다. 매창과 유희경·직소폭포는 부안삼절이다. 매창은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1569-1618) 등과 시를 주고받아 현재 시조 한수와 60여 편 한시를 남겼다. 강릉시·파주시·부안군이 사상 최초 ‘교차 금서시화琴書詩畵전’을 여는 것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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