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을 믿는다 / 박형준
달에 골목을 낼 수 있다면 이렇게 하리,
서로 어깨를 비벼야만 통과할 수 있는 골목
그런 골목이 산동네를 이루고
높지만 낮은 집들이 흐린 삼십촉 백열등이 켜진
창을 가진 달
나는 골목의 계단을 올라가며
집집마다 흘러나오는 불빛을 보며 울리라,
판잣집을 시루떡처럼 쌓아올린 골목의 이 집 저 집마다
그렇게 흘러나오는 불빛 모아
주머니에 추억 같은 시를 넣고 다니리라,
저녁이 이슥해지면 달의 골목 어느 집으로 들어가
창턱에 떠오르는 지구를 내려다보며,
한권의 시집을 지구에 떨어뜨리리라,
달에는 아직 살 만한 사람들이 산다고
나를 냉대했던 지구에
또다시 밝아오는 아침을 바라보며 오늘도 안녕
그렇게 안부 인사를 하리라,
당신이 달을 올려다보며 눈물지을 때
혹은 꿈꾸거나 기쁠 때
달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분화구들이 생겨나지,
우리가 올려다본 달 속에 얼마나 많은 거짓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슬픔이 있는지
그 거짓과 슬픔 속에서 속고 속이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던 것인지
나는 달의 분화구마다 골목을 내고 허름한 곳에서 가장 높은
판잣집의 저녁 창마다 떠오르는 삼십촉 흐린 불빛으로
지구를 내려다보며 울리라,
명절날,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고향 집 툇마루에서
저 식지 않을 투명한 불꽃을 머금고
하늘 기슭에 떠오른 창문을 바라본다
그렇게 달의 먼지 낀 창문을 열면
환한 호숫가에 모여 있는 시루떡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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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곳에 모여 살지만 가장 낮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달동네입니다. 시인은 달에 골목을 내서 “그런 골목이 산동네를 이루고/ 높지만 낮은 집들이 흐린 삼십촉 백열등이 켜진/ 창을 가진 달”이 된다면 어떨까 상상합니다. “창턱에 떠오르는 지구를 내려다보며” 허름하지만 “가장 높은/ 판잣집의 저녁 창마다 떠오르는 삼십촉 흐린 불빛으로” 지구의 밤을 밝히게 된다면 어떨까요? 명절날, 고향 집 툇마루에서 “달의 먼지 낀 창문”을 올려다보다가 이제는 사라진 달동네에 “얼마나 많은 슬픔이” 있었는지에 생각이 미치게 되면 “거짓과 슬픔 속에서 속고 속이는 것이” 삶 아닌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