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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박완호의 ‘나의 새들,’ 해설

  • 입력 2020.11.1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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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새들, / 박완호

 

나의 새들은 종()이 없다

본가 없는 선천성 떠돌이처럼

주소 불명의 꽃씨들처럼

나의 새들은 날개가 없다

아무 데도 못 가면서 먼 곳을 바라보는 나무처럼

나면서부터 눈먼 타고난 소리꾼처럼

엄마도 없이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아이처럼

나의 새들은 부리가 없다

날지도 못하고 노래도 못하면서

끝끝내 새이기를 꿈꾸는 나의 새들은

어제의 새다 내일의 새다 아니

오늘의 새일 뿐이다

나의 새들은 얼굴이 없다

이목구비를 못 가졌으니 더는 버릴 게 없다

긴 꿈에서 깨어날 일도 없다

나의 새들은 이름이 없다

무언가가 되려 할 뿐

애초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의 새들은 그림자가 없다

팔다리를 세게 휘저어 봐야 텅 빈 허공뿐,

그들처럼 나도

그림자를 지운 지 오래다

나에게는 이제 새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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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누구나 마음속에 파랑새 한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때는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는 부리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크고 튼튼한 날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현실에 발이 묶인 우리 안의 파랑새는 퇴화하고 말았습니다. 날개를 잃고, 노래를 잃고, 얼굴을 잃었습니다. 마침내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나자 파랑새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내면이 텅 빈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나이 들면서 꿈과 패기를 잃게 되는 게 인간의 숙명이겠지만 때로는 육신이 시들어가는 고통보다 더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나는 이제 새가 하나도 없다는 마지막 문장이 쓰라리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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