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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읽는 아침] 고경숙의 ‘마리오네트 주름’ 해설

  • 입력 2020.11.1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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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네트 주름 / 고경숙

 

  꽃다발 들고 서쪽을 향해 달려가다 풀썩 넘어진 저녁이 우네 손바닥에 무릎에 붉은 노을 범벅이 되었네

  도도하게 걷던 두 시의 태양과 힐을 집어 던지고 마른 젖을 물리던 세 시의 나뭇잎들, 그리고 늙지 않는 다섯 시의 그녀가 거리에 있네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고,

  스테이플러에 몇 장씩 묶인 시간이 도움닫기 발판처럼 거리에 널브러져있네

  왼발부터 내디뎠어야 했나 제자리 뛰기를 했어야 했나 잠깐이라도 고민해보았더라면, 저 해를 놓치지 않았을까

  제 다리를 깔고 앉아 출렁거리는 뒤통수, 팔다리가 엉키지 않게 모로 누워있다 음악이 들리면 벌떡, 완벽하게 일어서야 하네

  항구는 밤을 끌고 온 배들의 정박을 돕고 숄 하나 걸치지 않은 어린 집시처럼 이 생 또한 턱없네

  이 춤을 언제 멈춰야 하나 춤추는 동안 우리는 사랑을 하긴 한 걸까 강처럼 깊게 패인 주름에 입을 맞추네

  미세한 떨림으로 입술근육을 움직여보네 덜렁거리는 턱 근육은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늙지 않을래 웃다가 우네

  오, 마리오네트 절름절름 춤을 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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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마리오네트는 인형극에 사용되는 인형입니다. 마리오네트 인형 중에는 입을 닫고 벌릴 수 있게 만들어진 인형이 있는데, 이게 마치 사람 입가의 피부 처짐처럼 보인다고 해서 마리오네트 주름이라는 단어가 생겼다고 합니다. 마리오네트 주름이 신경 쓰일 때쯤이면 인생의 시계가 오후 다섯 시근처를 지나고 있을 것입니다. 그즈음은 꽃다발 들고 서쪽을 향해 달려가다 풀썩 넘어져 우는 나이이기도 하고, 영원할 것만 같던 젊음이 사라지고 곧 다가올 어둠을 예감하며 붉은 노을을 온몸으로 껴안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또한, 보이지 않던 인생이 보이기 시작하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절대자의 보이지 않는 실에 묶여 춤을 추고 있는 게 인생이라는 걸 문득 깨닫고 슬퍼지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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