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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천수호의 ‘그 자리’ 해설

  • 입력 2020.12.2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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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 / 천수호

 

  눈()은 기어서 흙탕물에 닿는다 눈이 녹은 흙 웅덩이를 건너서 해도 기어갔고 달도 넘어갔다 숱한 것들이 기울어져 녹아들어갔지만 새로 걸어나오는 게 없다 활활 타고 식고 또 갈려서 한 줌 재가 된 밤이 마흔아홉 번 지나갔어도 흙탕물은 눈을 게워내지 않고 꾸덕꾸덕 말라만 간다 심장만하던 물웅덩이가 이 들판의 씨앗으로 심어졌다 한 생이 거기 닿았다는 신호처럼 눈 녹은 물속에 싹이 튼다 육신도 영혼도 풀물이 든다 기어코 놓아야 하는 봄이 온다 배밀이 하던 한 생의 애도가 목감기만 남기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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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세상 가장 낮은 곳에 흙 웅덩이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 웅덩이를 건너기 위해서는 해도 달도 땅바닥을 기어서 가야 합니다. 겨우내 그토록 많은 하얀 눈을 삼키고도 흙탕물은 눈을 단 하나도 토해내지 못하고 꾸덕꾸덕 말라 갑니다. 웅덩이가 딱 심장만 한 크기로 줄었을 때, 봄이 왔습니다. 그러자 한 생이 거기 닿았다는 신호처럼흙탕물 속에서 싹이 틉니다.

아마도 화자는 누군가와 사별한 것 같습니다. 그 눈물 젖은 자리가 블랙홀처럼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말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기는 법. 마치 봄이 오듯, 눈물이 마른 자리에 애틋한 그리움이 싹텄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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