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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나금숙의 ‘사과나무 아래서 나 그대를 깨웠네’ 해설

  • 입력 2021.01.04 15:15
  • 수정 2021.01.0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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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아래서 나 그대를 깨웠네* / 나금숙

 

사과나무 아래서 그대는 나를 깨웠네
나무 아래 사과들은

해거름에 찾아오는
젖먹이 길짐승들의 것
꿈에서 깨어도 사과나무는 여전히 사과
베이비박스 속의 어린 맨발은
분홍 발뒤꿈치를 덮어줘야 해
쪼그맣게 접은 메모지에

네 이름은 사과
그러나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지을 때까지 지어보려는
파밀리아 성당처럼
사과들은 공간을 만들고
구석을 만들고
지하방을 만들고
삼대의 삼대 아비가 수결한 유언장 말미의 붓자국처럼
희미한 아우라를 만들고,
산고를 겪는 어미의 거친 숨결이
사과나무 가지 사이로
새로운 사과를 푸르게 푸르게 익혀가는 정오쯤
우리는 비대면을 위해 뒤집어쓴 모포를 널찍이 펼쳐서
하늘을 받는다 하늘의 심장을 받는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아가서 85절 중에서 인용
*마그리뜨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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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해거름 즈음, 조용하던 교회 안에 요란하게 벨소리가 울립니다. 졸고 있던 봉사자들이 벌떡 일어나 베이비박스로 달려갑니다. 베이비박스를 열자 “분홍 발뒤꿈치”의 어린 맨발이 울고 있습니다. 머리맡에 놓인 “쪼그맣게 접은 메모지에”는 “네 이름은 사과”라고 적어두고 간 친모의 마지막 편지가 남아있습니다. 봉사자들이 챙겨온 “모포를 널찍이 펼쳐서” 막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받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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