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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박상순의 ‘즐거운 사람에게 겨울이 오면’ 해설

  • 입력 2021.01.12 15:23
  • 댓글 0

즐거운 사람에게 겨울이 오면 / 박상순

즐거운 사람에게 겨울이 오면
눈보라는 좋겠다.
폭설로 무너져 내릴 듯
눈 속에 가라앉은 지붕들은 좋겠다.

폭설에 막혀
건널 수 없게 되는 다리는 좋겠다.
겨울 강은 좋겠다.
그런 폭설의 평원을 내려다보는
먼 우주의 별들은 좋겠다.

즐거운 도시를 지난 즐거운 사람은
눈보라 속에 있겠다,
어깨를 움츠린 채 평원을 바라보고 있겠다.
무너져버린 지붕들을 보겠다.
건널 수 없는 다리 앞에 있겠다.
가슴까지 눈 속에 묻혀 있겠다.

하늘은 더 어둡고, 눈은 펑펑 내리고,
반짝이던 도시의 불빛도 눈보라에
지워지고, 지나온 길마저 어둠 속에 묻히고,
먼 우주의 별들도
눈보라에
묻히고.

즐거운 사람은 점점 더 눈 속에 빠지고
가슴까지 빠지고
어깨까지, 머리까지 빠지고.

아주 먼 우주의 겨울 별들은 좋겠다.
밤은 좋겠다.
점점 더 눈 속에 파묻히는 즐거운 사람을 가진
폭설의 겨울은 좋겠다.

파묻힌 사람을 가진 겨울은 좋겠다.
파묻힌 사람을 가질 수 있는 겨울은 좋겠다.
얼어붙은 겨울 강은 좋겠다.
폭설에 묻혀,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도 않는
건널 수 없는 다리는 좋겠다.

즐거운 사람에게 겨울이 오면
눈 덮인, 막막한,
추운,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안타까운, 밤새워 바람만이 붕붕대는, 간절한,
눈 속에 다 묻혀버린,
저 먼 우주까지, 소리 없는,
겨울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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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겨울이 겹겹의 흰 눈을 껴입고 우리에게로 왔습니다. 눈 속에 파묻힌 즐거운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이번 겨울은 누구나 폭설에 파묻힌 그리운 사람을 가질 수 있는 겨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폭설에 묻혀 건널 수 없게 된 다리 덕분에 이편과 저편으로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계절이었으면 더 좋겠습니다. 점점 더 눈 속으로 깊이 빠져, 먼 우주의 별들까지 눈보라에 묻히는 그런 겨울밤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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