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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이영주의 ‘공중에 사는 사람’ 해설

  • 입력 2021.01.25 15:33
  • 수정 2021.01.2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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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사는 사람 / 이영주

 

  우리는 원하지도 않는 깊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땅으로 내려갈 수가 없네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싸우는 중입니다 지붕이 없는 골조물 위에서 비가 오면 구름처럼 부어올랐습니다 살냄새, 땀냄새, 피 냄새

  가족들은 밑에서 희미하게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 덩어리를 핥고 싶어서 우리는 침을 흘립니다

  이 악취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공중을 떠도는 망령을 향하여 조금씩 옮겨 갑니다 냄새들이 뼈처럼 단단해집니다

  상실감에 집중하면서 실패를 가장 실감나게 느끼면서 비가 올 때마다 노래를 불렀습니다 집이란 지붕도 벽도 있어야 할 텐데요 오로지 서로의 안쪽만 들여다보며 처음 느끼는 감촉에 살이 떨립니다 어쩌면

  지구란 얇은 판자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내려가지 않으면 실족할 수밖에 없는 구멍 뚫린 곳

  우리는 타오르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무너진 골조물에 벽을 세우는 유일한 방법

  서서히 올라오는 저녁이 노래 바깥으로 흘러갑니다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우리는 냄새처럼 이 공중에서 화석이 될까요

  집이란 그런 것이지요 벽이 있고 사라지기 전에 냄새의 이름도 알 수 있는

  우리는 울지 않습니다 그저 이마를 문지르고 머리뼈를 기대고 몸에서 몸으로 악취가 흘러가기를 우리는 남겨두고 노래가 내려가 떨고 있는 두 손을 핥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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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언젠가 수십 미터 높이의 타워크레인에 사람들이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정리해고에 대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주들에게는 엄청난 금액의 배당금이 쥐어졌지만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통고했고, 사람들은 삶과 일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그곳에 올랐습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공중에서 사는 사람”들은 100일이 넘도록 땅을 밟을 수 없었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 땅의 비정규직들에게 세상은 “조심스럽게 내려가지 않으면 실족할 수밖에 없는 구멍 뚫린 곳”입니다. 이 작품 속, “땅으로 내려갈 수” 없다고 버티는 사람들에게 “공중”은 현실의 부당함을 절규할 수 있는 장소이면서 끝까지 놓아버릴 수 없는 희망의 끈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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