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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읽는 아침] 정지용의 ‘발열(發熱)’ 해설

  • 입력 2021.02.02 08:13
  • 수정 2021.02.0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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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열(發熱) / 정지용

 

처마 끝에 서린 연기 따러
포도(葡萄)순이 기여 나가는 밤, 소리 없이,
가물음 땅에 시며든 더운 김이
등에 서리나니, 훈훈히,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어오르노나. 
가쁜 숨결을 드내쉬노니, 박나비처럼,
가녀린 머리, 주사 찍은 자리에, 입술을 붙이고
나는 중얼거리다, 나는 중얼거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다신교도(多神敎徒)와도 같이.
아아, 이 애가 애자지게 보채노나!
불도 약도 달도 없는 밤,
아득한 하늘에는
별들이 참벌 날으듯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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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한밤중에 열이 펄펄 오르는 아이와 그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며 애가 타는 부모의 마음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아픈 아이 곁을 지키는 아버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느님, 부처님을 부르며 아이의 열이 내리기를 간절하게 빌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 맺힌 눈물 때문에 하늘의 별들이 “참벌이 날으듯” 흔들려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시는 무려 1935년에 출간된 시집에 실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100년 가까이 지났어도 뛰어난 표현력 덕분에 시를 읽고 있으면 열 오르는 아이의 등을 만진 듯 뜨겁고 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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