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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읽는 아침] 홍일표의 ‘빗소리 경전’ 해설

  • 입력 2021.02.0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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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경전 / 홍일표

 

고택 마루에 앉아 듣는다

하늘에서 흘려보내는 어느 행성의 머나먼 이야기들을

 

비는 멈추지 않는다 네가 놓고 간 봄이 꽃피지 않아서

멀리 돌아서 온 소리들

다 벗어 버리고

알몸 하나로 투신하여 동그라미 둥지 속에 달을 낳는다

어릴 적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떨며 그리던

지붕 위 따듯한 만월

 

빗물 고인 마당을 맨발로 뛰어가는 물의 아이들

왜 희고 동그란 발만 보이는지

깡총거리며 연속으로 꽃눈을 틔우는 새 발자국만 보이는지

 

눈을 감는다

아픈 바닥을 다독이며 물의 씨앗을 파종하는 가늘고 투명한 손

비와 빗소리 사이

조금씩 보이던 것들이 다 지워져서

홀로 빗소리만 남은 곳

 

소리를 따라간다

저녁의 어깨 너머 누군가의 휘파람으로 떠돌던 내가 서서히 사라진다 어제 작성하던 문서도 주말의 약속도 의료 진단서도 보이지 않는다

 

여러 생을 건너와

오직 천지 가득 명랑하게 뛰노는 빗소리

빗소리

 

______________________

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시인은 고택 마루에 누워 빗물 고인 마당을 맨발로 뛰어가는빗발의 발자국 소리를 듣다가 눈을 감습니다. 그러자 비와 빗소리 사이에서 물의 씨앗을 파종하는 가늘고 투명한 손이 보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동그라미 둥지 속에 달을 낳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시인은 생각합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여러 생을 건너와” “어느 행성의 머나먼 이야기들을전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빗소리에서 시작해서 우주로까지 확장되는 상상력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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