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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고재홍 기자

[칼럼] 변산 최대사찰, 실상사를 복원하자!

  • 입력 2021.03.1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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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일보=호남]고재홍 기자=변산국립공원을 살리기 위해 지자체 및 정부 차원에서 변산 최대 사찰 ‘실상사 복원’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변산 관광객은 모악산과 선운산도립공원보다 적을 뿐 아니라 면적이 1/10 정도인 순창 강천산군립공원과 별 차이 없다. 코로나로 심각해져 피서 철이나 주말도 탐방객이 급감했다. 펜션은 찾는 이가 없어 부도가 적지 않고 건립을 추진하다 중단돼 익산지역 금융기관까지 대출금 회수에 골머리다. 올해도 ‘부창대교’ 예산은 없고 ‘부안-줄포-흥덕’과 ‘격포-줄포’ 4차선도 아득하다. 전남 섬지역에만 연육·연도교가 집중된다. “새萬金인지, 새亡金인지 2050년 준공으로 미뤄져 ‘착공 후 환갑’ 때나 끝날지, 다시 연장할지 알 수 없다.”

어족자원 고갈로 농토나 축산 외 소득원이 없는데다 관광객도 안 오니 읍내도 썰렁하다. 인구 2만994명 부안읍도 공동화되는 구도심이 주차장과 소공원으로 채워진다. 젊은이는 없는데 전임 군수 시절부터 공원이나 체육시설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한 고마제·신운천 등지는 사람을 볼 수 없다. 13개 읍면 부안 인구는 5만1963명이다. 무진장·임실·순창에만 앞선 도내 9위이나 실제 4만 명대라는 여론이다. 대천·만리포와 함께 서해안 3대 해수욕장이던 변산해수욕장은 관심권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변산해수욕장 관광지 조성사업’ 현장은 나대지로 썰렁하다. ‘부안제3농공단지’도 허허벌판이나 기업 유치는 없고, 공원 조성과 도로 개보수 및 조명 시설뿐이어 누구를 위한 혈세낭비냐는 비판이다. 일자리나 소득과 관련 없는 건설·조경업체만 좋은 일회성 ‘매몰예산’ 낭비를 막고, ‘실상사 복원’으로 내변산 활성화를 꾀함이 좋을 것 같다.

1988년 지정된 ‘변산국립공원’은 153.93㎢로 면적이 조정됐다. 부안군 1/3에 육박하고, 부안·고창 상수원 부안댐으로 ‘상수원보호지역’ 16.85㎢에, 변산 1백㎢가 ‘국·공유림’이다. 삼중으로 묶여 관광개발에 엄청난 장애다. 광활한 내변산에 슈퍼 하나 없으니 통째 놀리는 셈이다.

변산 탐방객은 지리산·내장산국립공원보다 적을 뿐 아니라 4개 도립공원 중 대둔산·마이산에 앞설 뿐, 모악산·선운산보다 적다. 산내들·바다와 섬 등 탁월한 경관에도 변산 개발이 수십 년 답보상태기 때문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협의해 유망지역을 공원 해제시키고, <실상사 복원·월인청강박물관 건립·내변산 집단시설지구 조성·부안댐순환도로 개설> 등을 추진해야 한다.

변산 4대 사찰 으뜸은 실상사이고, 2위 선계사, 3위 청림사, 4위 내소사가 꼽혔으나 1-3위는 사라지고, 4위였던 내소사가 최대 사찰이 됐으며, 개암사가 다음이다. 남원 실상사와 한문도 같은 부안 실상사 ‘실상實相’은 ‘만물이나 생명의 근원’을 뜻한다. 신라 신문왕 9년(689) 초의 스님이 처음 세우고, 조선 세종 형인 효령대군이 중창한 실상사는 6.25 때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소실됐다. 현재 스님 세 분이 거주하며 산신각·미륵전·선방만 남아있다. 소실 후 50년 무주공산이었다가 일부 특조법으로 넘어간 알박기 식 토지 외에 임야와 밭 등 5만여 평은 실상사 소유다. 국립공원관리공단과는 사찰 건립 협의가 완료된 상태다. 

직소폭포 가는 길, 천왕봉과 인장봉 사이 탁월한 입지 실상사는 이씨 왕조 기원사찰이다. 국보 320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실상사 본존불상 복장 유물로 있다가 동학군이 군자금 확보과정에 금붙이 등은 가져가고 서책 등은 남겨놓아 세상에 나왔다. 전남 담양 사찰 등을 오가다 1961년 공개돼 국보가 됐다. 월인청강지곡은 훈민정음 창제 후, 최초 한글 활자본으로 세종이 석가 공덕을 칭송해 한글로 지은 악장(찬불가)과 이를 기록한 책이다. 실상사 복원으로 되찾아 마백연구소 발굴유물 등과 함께 박물관 건립에 활용돼야 한다.

퇴계 이황(1501-1570)은 ‘실상사’와 ‘직소(직연)폭포’ 및 변산 최고봉 ‘마천대(의상봉)’를 각각 7자8행 56자 씩 168자 한시로 유람기를 남겼다. 전남 광산 칠계 김언거(1503∼1584) 친구가 유람기를 보내자 변산에 오지도 않고 답시 등을 지었다. 그의 <실상사남계운實相寺南溪韻>에는 총림叢林(선원·강원·율원 등을 갖춘 대규모 사찰) 용어를 사용했다. 시서화 삼절이자 ‘예원의 총수’로 처갓집인 안산에 머물며 ‘단원 김홍도’ 등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으며, 부안 현감 강완의 아버지인 표암豹菴 강세황(1713~1791)의 유우금암기에는 개암사·우금암·실상사·용추龍湫(직소)·월명암을 구경하며 기록한 글과 그림이 그려졌다. 스님 등이 멘 가마를 타고 변산 유람으로 유명한 강세황이 그린 실상사 전경에는 14동 전각이 그려져 방대한 사찰임을 반증한다. 육당 최남선도 1925년 ‘심춘순례’에서 변산팔경 하나로 실상용추를 꼽았다. ‘실상사도 복원’하고 ‘월인천강박물관’ 및 퇴계 등 각종 ‘변산유람 한시 및 번역 시비’ 등을 세우고 ‘내변산집단시설지구’ 조성과 ‘부안댐순환도로’도 개설함이 어떨까? 전북도나 부안군은 물론 중앙정부 차원의 관심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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