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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경주의 ‘내 워크맨 속 갠지즈’ 해설

  • 입력 2021.03.3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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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워크맨 속 갠지즈 / 김경주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열두살이 되는 밤부터 라디오 속에 푸른 모닥불을 피운다 아주 사소한 바람에도 음악들은 꺼질 듯 꺼질 듯 흔들리지만 눅눅한 불빛을 흘리고 있는 낮은 스탠드 아래서 나는 지금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는 메아리 하나를 생각한다 
  나의 가장 반대편에서 날아오고 있는 영혼이라는 엽서 한 장을 기다린다   

  오늘 밤 불가능한 감수성에 대해서 말한 어느 예술가의 말을 떠올리며 스무 마리의 담배를 사오는 골목에서 나는 이 골목을 서성거리곤 했을 붓다의 찬 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고향을 기억해낼 수 없어 벽에 기대 떨곤 했을, 붓다의 속눈썹 하나가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나는 겨우 음악이 된다   

  나는 붓다의 수행 중 방랑을 가장 사랑했다 방랑이란 그런 것이다 쭈그려 앉아서 한 생을 떠는 것 사랑으로 가슴으로 무너지는 날에도 나는 깨어서 골방 속에 떨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눈은 강물 냄새가 난다   

  워크맨은 귓속에 몇천 년의 갠지즈를 감고 돌리고 창틈으로 죽은 자들이 강물 속에서 꾸고 있는 꿈 냄새가 올라온다 혹은 그들이 살아서 미처 꾸지 못한 꿈 냄새가 도시의 창문마다 흘러내리고 있다 그런데 여관의 말뚝에 매인 산양은 왜 밤새 우는 것일까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표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산양은 그토록 많은 별자리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바게스트 하우스 창턱에 걸터앉은 젊은 붓다가 비린 손가락을 물고 검은 물 안을 내려다보는 밤, 내 몸의 이역(異域)들은 울음들이었다고 쓰고 싶어지는 생이 있다 눈물은 눈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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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인생은 고통이고 사람은 다 외로운 존재들입니다. 육신이 불타 갠지즈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고 나면, 못다 이룬 아름다운 꿈은 지상 어딘가에 남아 음악이 되나 봅니다. 누군가는 음악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와 나의 일부를 이루는 일을 인연이라 부릅니다. 아마도 몸 안으로 흘러들어온 음악에 기대 삶의 만 가지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는 일이 아무리 눈물로 가득 차다고 해도, 세상의 막다른 골목에 버려져 있는 “붓다의 속눈썹” 같은 작은 위로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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