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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박은경의 ‘황홀은 그 다음’ 해설

  • 입력 2021.05.1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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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은 그 다음 / 김박은경

 

  압화가 있다 얇다 작다 길다 검다 희다 언뜻언뜻 붉은 씨방이 보인다 씨앗들이 보인다 기억은 만개의 순간을 놓지 않는다 저 꽃가지쯤에 앉았겠지 피어나기 시작한 새와 어지러이 날아가는 꽃송이라니 황홀이라고 바로 지금이라고 더욱 눈 감지 않고 날지 않으며 허기도 연명도 없다고 충분히 높고 깊어 더 이상 향할 곳이 없다고 완벽이라고 최후를 울었겠지 그대로 영원이 되었을 텐데, 

  여기 한 송이 길조가 피어 무구한 낙화들을 예언할 때 오월은 다음을 향해 저녁은 다음을 향해 사라지는 것은 더욱 사라지고 유한은 무한은 서로의 다음이 된다 새였던 것이 꽃이었던 것이 그것이었던 것이 아닌 것이 된다 희박해진다 대기는 온갖 것들로 가득해 온 사방 그것이 아닌 것이 없어 나는 새 나는 꽃 나는 불 나는 밤 나는 날고 나는 피어나고 나는 뜨겁고 나는 어둡다 

  나를 위해 죽고 싶은 사람을 위해 죽고 싶어 당신도 같다면 우리는 한통속, 분별이 없어 똑같은 고백과 이별이 되풀이된다 한다 실수와 실패를 되풀이한다 능동과 피동을 뒤섞는다 뒤섞인다 어지러워 서둘러 다음이 되고 싶어 가능의 불가능의 그 다음이 되고 싶어 이상한 결론의 방식이 마음에 들어 더 멀리 있는 별이 더 빨리 사라진다고 했지 우리는 그것을 재촉하고 어디서든 새는 최선을 울고 황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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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수없이 많은 기억의 씨방을 봉인한 꽃, 압화는 황홀한 미라입니다. 마치 기억 속에 박제된 지나간 사랑처럼 말입니다. “꽃가지”에 앉았다 간 바람과 “어지러이 날아가는 꽃송이” 대신 더는 “눈 감지 않고” 더는 “날지 않”는 아름다운 “허기”만 가득 채운 꽃, 너무 아름다워서 차마 그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꽃, 그리하여 “그대로 영원이 되”어버린 꽃, 그런 압화가 우리 가슴 속 어딘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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