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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박미산의 ‘삼등열차는 지금도 따뜻하고요’ 해설

  • 입력 2021.11.1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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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등열차는 지금도 따뜻하고요 / 박미산

 

언제부터 살았나요 당신은,

알라하바드의 삼등열차가 다가옵니다

이틀 밤낮, 열차 칸에서 새우잠을 잤지요

원시림처럼 빽빽하게 서 있던 여자들이 어느새

족보를 등에 진 채 편안하게 앉아 있어요

수천 년 내려온 핏줄들 사이에

짜파티와 바나나를 나눠주는 나를

카레 냄새와 호기심 가득한 까만 눈들이 바라보고 있어요

다섯 명의 하리잔 여인들과 일인용 의자에

겨우 엉덩이만 붙이고 잠이 들었어요

열차는 강물처럼 흘러갔지요

갑작스러운 복통에 참을 수 없는 신음과 진땀이 흘렀어요

검은 눈망울들이 소란스럽게 파도를 타기 시작했어요

내 곁에 있던 쉬레아가 주문을 외우자

여인들이 합창을 했어요

열차 안은 여인들의 주술이 출렁이고

그녀들의 눈빛이, 그녀의 거친 손이

밤새 내 몸을 쓸어주었어요

등허리가 축축해지며

따뜻한 강물이 내 몸에 흘러들어오고

태양이 떠올랐어요, 어느새

사리 입은 그녀들과 나는 긴 머리를 풀고

어머니의 품속으로 들어갔어요

그녀들과 나, 타다 만 시체들이 번져가는 물결 따라 떠다닙니다

은밀하게 유랑병이 도지네요

내 발바닥에서 잔뿌리가 쑥쑥 자라고,

이파리는 나를 가로막는 릭샤꾼을 밀치고,

오래전 바라나시에 두고 온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따뜻하고 싱싱하게 만져지는 그 새벽, 어머니의 물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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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은 반세기 전 인도의 모습을 담은 책이지만 펼치는 순간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삶과 죽음, 철학과 혼돈, 종교와 삶의 부조리가 뒤엉킨 날것 그대로의 인도의 모습은 삶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이 작품 속, 삼등열차에 구겨 앉은 여인들의 모습에서 인도방랑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짜파티와 바나나를 나눠주는이방인을 호기심과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여인들. 하지만 다섯 명의 하리잔여인들과 일인용 의자에 앉아 잠들었던 화자가 갑자기 배탈이 나자 열차 안의 여인들이 합창하듯 주문을 외워줍니다. 그들의 걱정하는 눈빛과 아픈 몸을 쓰다듬어준 거친 손어머니의 그것이었습니다. 사리를 입은 불가촉천민 하리잔여인들과 이방인은 긴 머리를 풀고서로에게 기대어 새벽을 맞습니다. 그들을 실은 기차는 타다 만 시체들이” “물결 따라흘러가는 강물을 가로질러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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