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歸天) / 마경덕
산 중턱이 누군가를 지우고 있다
오래전 이곳을 지나갈 때
앳된 여자가 엎드려 울던 곳이었다
이듬해
붉은 사과 하나가 발치에 오도카니 놓여있었다
억새가 봉분을 올라타고 히이잉 늙은 말소리로 울 때
사람의 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무심코 밟고 지나간
납작한 흔적은
천천히 쉬지 않고 가라앉는다
내가 바라보는 동안에도
캄캄한 안쪽의
안쪽으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끝내
무덤은 무덤에서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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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심장이 멈추고 마지막 호흡이 육신을 떠난다고 해서 어떤 존재가 곧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를 기억하는 사랑하는 사람들마저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때 진정한 의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그 아프고도 잔인한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앳된 여자가 엎드려 울던” 새 무덤은 머지않아 “붉은 사과 하나”가 지키는 평범한 무덤이 됩니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억새가 봉분을” 뒤덮고 “사람의 기척은 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리하여 “천천히 쉬지 않고 가라앉”던 봉분이 평평해져 그곳이 무덤이었다는 사실조차 잊히게 되면, 무덤의 주인은 비로소 진정한 안식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