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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서상영의 ‘꽃범벅’ 해설

  • 입력 2022.04.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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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범벅 / 서상영

 

  꽃 베던 아해가 키 높은 목련꽃 예닐곱 장 갖다가 민들레꽃 제비꽃 하얀 냉이꽃 한 바구니 모아다가 물 촉촉 묻혀서 울긋불긋 비벼서 꽃범벅, 둑에서 앓고 있는 백우(白牛)한테 내미니 독한 꽃내 눈 따가워 고개를 젓고
  그 맛 좋은 칡순 때깔 나는 안들미 물오른 참쑥 키 크다란 미나리를 덩겅덩겅 뜯어서 파란 꽃떡 만들어서 쏘옥쏘옥 내미니 소가 히이- 우서서 받아먹어서 한 시루 두 시루 잘도 받아먹어서

 

  아하, 햇살은 혓바닥이 무뎌질 만큼 따스웁더라


  이해는 신기해서 눈물 나게 슬퍼서 하도 하늘 보며 초록웃음 웃고파서 붉게 피는 소가 못내 안타까워서 속털도 빗겨주고 눈도 닦아주고 얼굴만 하염없이 쓰다듬고 싶어서 깔끌한 혓바닥이 간지러워서
  꽃과 같이 하르르 소에게 먹였더라
  이 봄에 꽃들이 너무도 쓸쓸해지면
  곁불 쬐러 나온 나비가 겁먹은 왈츠를 춘다


  소는 제 안만 디려다보고 아릿아릿 아려서 시냇같이 줄줄 눈물만 흘려서 발굽 차고 꼬릴 들어 훌~~ 치달려서 철쭉송화 우거진 산에 숨어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아하, 앞산에 봄이 오자 꽃부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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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봄날, 철없는 아이는 꽃을 한 바구니 따다가 색색으로 버무려 꽃범벅을 만들어서 소에게 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소는 꽃범벅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이는 쑥, 미나리 같은 풀을 잔뜩 뜯어서 파란 떡을 한 소쿠리 만들어서 주었습니다. 그제서야 소가 맛있게 먹기 시작합니다. 햇살이 풀을 먹는 소의 혓바닥에 따스하게 내리고, 아이는 그 모습이 신기해서 소의 털도 빗겨주고 얼굴도 쓰다듬어주다가 그만 꽃을 섞어서 소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멋모르고 받아먹다가 혀가 아려서 눈물을 흘리던 소는 얼른 내달아 철쭉이 우거진 산에 숨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꽃과 아이와 소가 등장하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봄날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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