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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화재를 회상하며…

  • 입력 2011.11.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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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업무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 "연평도에 원인을 알수 없는 포가 계속 떨어져 온 마을이 불바다가 되고 있다"는 내용의 긴급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사무실에 전파됐다.

나는 즉시 종합상황실로 달려갔고 대형스크린에는 방송내용 그대로 처참한 광경이 뉴스속보로 생생하게 비쳐지고 있었다.

그 당시 연평도에는 소방차 1대와 대원 2명이 전부여서 하루에 1명씩 나홀로 소방관이 근무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비상사태에 제대로 대응할 능력이 없었다.

나는 인천지역 소방력 출동에 관한 책임업무를 맡고 있었기에 즉시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지만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전쟁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놓고 연평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쉽게 갈 수도 없거니와 포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생명을 걸고 누가 가겠느냐는 등 위기 대응방법을 놓고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소방이 존재하는 이유는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있기에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무고한 주민의 목숨과 생활터전이 무방비로 노출돼 온 마을이 잿더미가 돼가는 것을 지켜만 본다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소방의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기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현지에 가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 결과, 즉시 비상소집령이 발령됐고 총 책임자인 나를 비롯한 많은 대원들은 갑작스럽게 동원돼 허겁지겁 마련된 화물선에 몸을 싣고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하는 자포자기의 침울한 심정으로 입조차도 꾹 다문 채 뜬눈으로 앞으로 닥칠 일들을 걱정하며 밤새도록 전장을 향해 달렸다.

다음날 새벽, 현지에 도착하니 매캐한 화약냄새 그리고 뽀얀 연기가 항구의 불빛에 안개처럼 다가왔고 마중나온 완전무장한 군인들의 모습은 한번 더 대원들의 용기를 꺽고 있었다.

연평 초등학교 운동장에 전 대원을 집결시킨 후 휴식도 없이 현지 직원과 의용소방대원들의 협조를 얻어 긴급한 곳부터 우선해 소방력을 출동시켰다.

몇 시간 후 날이 밝아 주변을 자세히 돌아보니 그때 까지도 주택가 화재는 진압이 덜돼 박힌 포탄 주변에서 불꽃과 연기가 계속해 분출하고 있었고 마을을 둘러싼 산은 온통 불덩이였다.

그렇지만 화재진압은 날이 새며 속력이 붙어 주택화재는 오전 중에, 그리고 산불은 오후 늦게 완전히 진화돼 저녁 무렵에는 잔불감시와 대민지원 활동으로 임무를 전환했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까지 별 이상이 발생하지 않아 의미있는 업무하나를 마무리 지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3일간의 임무를 마치고, 갈 때와는 달리 가벼운 마음으로 대원들과 짐을 챙겨 우리를 전쟁터로 실어 날랐던 그 배로 무사히 돌아오게 됐다.

여기서 이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으로는 또다시 이러한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온 국민이 힘을 합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적의 포격으로 억울하게 희생을 당한 분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소방인이라는 직업정신으로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며 전쟁터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해준 동료 대원들께 감사를 드리며 특히 우리의 소방력 운용에 많은 도움을 주신 연평초등학교, 연평면 사무소, 현지 해병부대, 대한적십자사 관계자 여러분과 포탄이 쏟아지는 위험한 순간에도 자기 고장을 재난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밤낮없이 인명대피와 화재진압 등에 힘쓴 연평면 의용소방대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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