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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이정록의 ‘노란 주전자’ 해설

  • 입력 2022.06.21 15:59
  • 댓글 1

노란 주전자 / 이정록
 

  마음은 노란 주전자 같아. 황금을 꿈꾸지만 빛깔뿐이지. 게다가 뚜껑이 자주 열리고 동굴처럼 시끄럽기 일쑤지. 끓기도 전에 들썩거리고 잔바람에도 나뒹굴 때가 많지. 뚜껑에 끈을 달아야겠어. 가슴과 머리가 짝이 안 맞아. 가벼운 충격에도 안으로 쭈그러지니까 자꾸만 속이 좁아져. 상처를 닦고 지우려 해도 달무리처럼 사라지지 않아. 벽에 걸린 주전자처럼 둥근달이 되고 싶어. 시든 꽃나무나 목마른 목젖에 달빛을 따라주고 싶어. 맞아. 주전자는 성선설 쪽이야. 후딱 달아오르고 쉬이 식는 게 흠이지만, 맹물이나 모래라도 채우고 나면 바닥에 착 가라앉는 느낌이 좋아. 온몸에 차가운 물방울이 잡힐 때는 이지적이란 생각도 들어. 마른 화단이나 파인 운동장에 몸을 기울일 때 가장 뿌듯해. 다 내어주어서 어둡고 서늘해질 때 나는 잠깐 황금 주전자가 돼. 하지만 황금보다는 가볍고 명랑한 황금빛이 좋아. 나는 노란 주전자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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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인간의 내면이 양은주전자를 닮았다는 발상이 참 인상적입니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묵직하게 빛나는 “황금”이기를 꿈꿉니다. 하지만 현실은 “빛깔”만 조금 비슷할 뿐, 걸핏하면 “뚜껑이” 열리고, 아무 데서나 요란한 소리를 내다가 텅 빈 내면을 들키곤 합니다. “후딱 달아오르고 쉬이 식는” 것도 모자라 “가벼운 충격에도” 쭈그러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못난 상처는 아무리 애를 써도 회복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속 끓이며 데워낸 물을 추위에 떠는 이들에게 기꺼이 내어줄 줄 아는 존재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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