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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이명선의 ‘막역하던 사람이 막연해질 동안’ 해설

  • 입력 2022.07.2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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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역하던 사람이 막연해질 동안 / 이명선

 

  당신의 추도식이 있는 성당 맞은편으로 주말이면 플리마켓이 열린다 자유로운 추모 속에 사이프러스 이파리가 반짝이고 어린 무법자의 양손에는 아침을 씻어낸 작은 고양이가 안겨 있다

  철망을 넘어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이 생겨나 빗장에 걸어둔 오후가 여린 맥박처럼 몰려다녔다

  막역하던 한 사람이 막연해지는 동안 우리는 언제나 호의적인 사람 곁에서 아름다운 착지와 희망을 이야기한다 어둠이 기거하던 철망 너머 불 꺼진 방과 저무는 도시의 창문을 장밋빛으로 물들일 수도 있다

  당신의 날씨에서 빠져나온 오래된 종려나무 화석과 여러 지명이 찍힌 낙과들이 물들어 갈 때 고양이 앞에 웅크린 무당개구리의 점액질에서 치명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죽이 잘 맞던 애인과 둔덕이 많은 도시를 찾다 잠든 밤에도 네일숍 간판은 여전히 깜빡이고 곳에 따라 흩뿌리는 비

  여긴 대체로 일조량이 적어 아침에 눈을 뜨면 확신이 들거나 수월한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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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작은 애완동물을 키운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행복했는데 딱 한 번, 정말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작은 생명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였습니다. 한 생명이 세상에서 사라졌는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잘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슬펐습니다. 손바닥만 한 생명도 그럴 정도인데,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추도식”이 열리는 “성당 맞은편”에서 “사이프러스 이파리가 반짝이고” “작은 고양이”를 안은 아이가 지나가는 장면에서 화자가 느끼는 슬픔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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