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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장철문의 ‘용의 자취를 기록함’ 해설

  • 입력 2022.08.0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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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자취를 기록함 / 장철문

  

용은 유난히 새뜻한 구름 위에 새끼를 친다

동지구름이 유달리 빛나는 것은
아비가 알을 품으면서 흐뭇해한다는 것이
미소가 온몸으로 번지고
구름이 거기에
슬그머니 감전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알을 낳기는 암컷이 낳지만
품기는 수컷이 품는데*,
알을 품을 때 수컷은
비늘이 깃털과 같이 보송해지고
발톱이 콩나물 대가리처럼 윤기가 흐른다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장마가 시작될 무렵인데
새끼의 피부가 촉촉하게 유지되기도 하지만,
먹장구름에 가려서
장난치고 노는 것이 사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용이 무엇을 먹는지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공중에 흩어진 기운을 피부로 섭취한다고도 하고
어미가 유난히 높이 나는 맹금류를 향해 불을 뿜어서
연기로 만들고
그것을 들이마신 뒤 숨으로 토해 먹인다고도 한다

장마철이 지나면 새끼의 몸이 다 자라는데,
아직 비늘이 딱딱하지도 않고 가죽이 질기지도 않다
새끼들은 주로 소나기구름 속에 몸을 숨기는데,
소나기가 천지를 진동하며 퍼부을 때는
신바람이 나서 강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여름 땡볕에 비늘은 찬란한 은빛을 얻게 되고
가죽은 벼린 탈을 무디게 할 만큼 질겨진다
태풍 속에서 하늘을 휘젓고 다니거나
산봉우리를 냅다 들이받기도 하는데
이때 포악함을 일으키고 또 누그러뜨리는 법을 배운다

마른 바람이 풀을 말리고 땅을 식힐 때쯤에는
몸을 한번 꿈틀하면
한 하늘눈*을 너끈히 날 수 있게 된다
노을이나 바람, 안개와 몸을 섞는가 하면
푸른 하늘과도 섞어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도 사람 눈에 띄지 않게 된다

사람들이 용이 없다고도 하고 있다고도 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 용이 암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알을 암컷이 낳고 수컷이 품는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기록도 있다.

* 사람이 고개를 꺾어 하늘을 볼 때 한 번에 볼 수 있는 하늘의 넓이, 또는 그 넓이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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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얼마 전 제주도에서 용오름 현상이 목격되었습니다. 기상현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신비로움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용오름 현상에 대한 시가 없을까 검색을 하다가 여름이 용의 산란기라고 주장하는 참신한 발상의 작품을 만났습니다. 용은 “유난히 새뜻한 구름 위에”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알을 낳기는 암컷이 낳지만/ 품기는 수컷이” 품습니다.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장마가 시작될 무렵”인데, “어린 용”을 잘 먹이기 위해 어미가 “불을 뿜어
서” 먹잇감을 구한다고 합니다. 장마가 지나 몸이 자란 새끼용은 가끔 “소나기구름”에 몸을 숨기고 “강으로 곤두박질 치”며 놀기도 한다고 합니다. 조금 더 자라서 “여름 땡볕” 덕분에“찬란한 은빛” 비늘을 가지게 되고 나면, 가을 “태풍 속에서 하늘을 휘젓고 다니다” “산봉우리”에 “냅다 들이받”아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여름이 늘 뜨겁고 시끄러운 걸 보니 용에게도 육아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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