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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근의 ‘형’ 해설

  • 입력 2022.08.17 16:17
  • 댓글 0

/ 김근 
- 둔갑 

  매일 뼈를 잃어버리고 온 여자가 있었던 모양이었는데, 
  하루는 손가락뼈를 죄다 흘리고 빈 장갑 같은 손을 흔들며 오고 하루는 정강이뼈를 빠뜨리고는 기다란 양말처럼 발을 끌고 오고 나중에는 넓적다리뼈 엉치뼈 또 나중에는 열두 대 갈비뼈며 척추도 후두둑 떨어뜨리고 마침내는 내장도 다 쏟아버리고 제 두개골마저 무슨 커다란 씨앗이라도 뱉듯 쏙 발라버리고 뭍에 올라온 해파리처럼 흐물흐물흐물해져서는 기어 기어 오고 오고 왔던 모양이었는데, 
  공장 굴뚝의 그날따라 새까만 연기가 뭉텅뭉텅 베어져 그 동네 골목마다 가득 들어차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던 그런 날이었나 본데, 그런 해질녘이었나 본데, 그런 새벽녘이었나 본데, 
  형은 겨우겨우 기어오고 있는 여자의 껍질을 주워 제 몸에 뒤집어 썼더라는데, 
  해서 형은 영락없이 그 여자로 둔갑되었더라는데, 그리고는 매일 아침이면 긴 머리 휘날리며 또각또각또각, 뼈를, 
  잃어버리러 가고 가고 갔다는 이야기인데, 말인즉은, 

  습지에서 기어 올라온 수많은 민달팽이 떼가 형의 벌거벗은 몸을 뒤덮어버리는 장면은 어느 영화에선가 본 것도 같고, 가물가물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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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세상을 살다 보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 같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여기, “매일 뼈를 잃어버리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손가락뼈”를, 그다음에는 “정강이뼈”를 잃더니 나중에는 “갈비뼈”와 “척추”마저 잃어버리고는 “해파리처럼 흐물흐물”해져 버립니다. 작가는 자신을 지탱하던 뼈대를 잃고 흐느적거리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잃어버린 인간의 비참한 말로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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