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달을 보며 / 문정희
그대 안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보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 봄의 온갖 가시덤불 속에서도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올랐구나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
참으로 옥양목같이 희고 맑은
우리들의 살결로 살아났구나.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오늘은 한가윗날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
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다
가혹한 짐승의 소리로
녹슨 양철처럼 구겨 버린
북쪽의 달, 남쪽의 달
이제는 제발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 놓고
나의 추석달은
백동전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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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가 쓸고 간 자리에, 성난 태풍이 몰아친 자리에 보름달이 떠오릅니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둥실 떠오릅니다.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에서 “곱게” 떠오릅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좌와 우로 갈라진 세상이 “크고 둥근 하나”가 되라고 달이 떠오릅니다. “백동전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라고 올해도 “추석달”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