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의 나무 / 박준
불을 피우기
미안한 저녁이
삼월에는 있다
겨울 무를 꺼내
그릇 하나에는
어슷하게 썰어 담고
다른 그릇에는
채를 썰어
고춧가루와 식초를 조금 뿌렸다
밥상에는
다른 반찬인 양
올릴 것이다
내가 아직 세상을
좋아하는 데에는
우리의 끝이 언제나
한 그루의 나무와
함께한다는 것에 있다
밀어도 열리고
당겨도 열리는 문이
늘 반갑다
저녁밥을 남겨
새벽으로 보낸다
멀리 자라고 있을
나의 나무에게도
살가운 마음을 보낸다
한결같이 연하고 수수한 나무에게
삼월도 따듯한 기운을 전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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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지나면 곧 2월입니다. 꽃소식은 듣지도 못했는데,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는 소식부터 들려와서 몸도 마음도 자꾸만 움츠러드는 요즘입니다. 일 년 중 가장 짧은 달인 2월을 보내고 나면 삼월이 옵니다. 쌀쌀하지만 어딘가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때가 삼월이지요. 곧 새싹을 맞을 준비를 하는 삼월의 나무들은 한결같이 연하고 수수하기만 합니다. 암울한 소식이 들리는 이때, 아직 세상을 좋아할 이유가 남아있다면 언제나 봄이면 돌아와 꽃을 피워주는 한 그루의 나무가 우리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