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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진완의 ‘기찬 딸’ 해설

  • 입력 2020.02.17 14:58
  • 수정 2020.02.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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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찬 딸 / 김진완

 

  다혜자는 엄마 이름. 귀가 얼어 톡 건들면 쨍그랑 깨져버릴 듯 그 추운 겨울 어데로 왜 갔던고는 담 기회에 하고, 엄마를 가져 싸아한 진통이 시작된 엄마의 엄마가 꼬옥 배를 감싸쥔 곳은 기차 안. 놀란 외할아버지 뚤레뚤레 돌아보니 졸음 겨운 눈, 붉은 코, 갈라터진 입술들뿐이었는데 글쎄 그게, 엄마 뱃속에서 물구나무를 한번 서자,

  으왁!

  눈 휘둥그런 아낙들이 서둘러 겉치마를 벗어 막을 치자 남정네들 기차 배창시 안에서 기차보다도 빨리 ‘뜨신 물 뜨신 물’ 달리기 시작하고 기적소린지 엄마의 엄마 힘쓰는 소린지 딱 기가 막힌 외할아버지 다리는 후들거리기 시작인데요, 아낙들 생침을 연신 바르는 입술로 '조금만, 조금만 더어' 애가 말라 쥐어트는 목소리의 막간으로 남정네들도 끙차, 생똥을 싸는데 남사시럽고 아프고 춥고 떨리는 거기서 엄마 에라 나도 몰라 으왕! 터지는 울음일 수밖에요.

  박수 박수 “욕 봤데이.” 외할아버지가 태우신 담배꽁초 수북한 통로에 벙거지가 천정을 향해 입 딱 벌리고 다믄 얼마라도 보태 미역 한 줄거리 해 먹이자, 엄마를 받은 두꺼비상 예편네가 피도 덜 닦은 손으로 치마를 걷자 너도나도 산모보다 더 경황없고 어찌할 바 모르고 고개만 연신 주억였던 건 객지라고 주눅든 외할아버지 짠한 마음이었음에랴 두말하면 숨가쁘겠구요. 암튼 그리하야 엄마의 이름 석 자는 여러 사람들의 은혜를 입어 태어났다고 즉석에서 지어진 것이라.

  多惠子.

  성원에 보답코자

  하는 마음은 맘에만 가득할 뿐

  빌린 돈 이자에 치여

  만성두통에 시달리는

  나의 엄마 다혜자씨는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끓어오르는 부아를 소주 한잔으로 다스릴 줄도 알아 “암만 그렇다 캐도 문디, 베라묵을 것. 몸만 건강하모 희망은 있다.”

  여장부지요

  기찬,

  기―차― 안 딸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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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한겨울 기차 안, 만삭의 임신부에게 갑작스런 진통이 찾아옵니다. 졸음에 겨운 눈, 갈라터진 입술의 농투성이들이 놀라 어쩔 모르면서도 낯선 여인의 분만을 한마음으로 도와줍니다. 아낙들은 겉치마를 벗어 막을 치고, 남정네들은 뜨신 물을 구해오느라 부산합니다. 무사히 한 생명이 첫울음을 터뜨리고 이제 막 아버지가 된 이에게 누군가 미역 살 돈을 내놓습니다. 여러 사람의 은혜로 태어났다고 해서 그 아이는 다혜자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조금은 수다스럽지만 걸쭉한 입담이 정 많은 우리네 할머니들의 모습을 닮은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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