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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고재홍 기자

[칼럼] 마한고도 나주, 마한실종 익산!

  • 입력 2020.06.0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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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일보=호남]고재홍 기자=‘마한교육문화회관’ 등 도교육청 직속기관 명칭 변경 조례개정을 도의회가 의결해 도교육청이 반대하고, 익산에서도 “마한교육문화회관의 익산교육문화회관으로 개칭은 역사성 무시다.”며 반발한다. ‘마한왕도’ 익산을 백제왕도라며 주요 유물·유적을 서동설화 주인공 무왕(재위 600-641)과 연계시켜 마한 실종이 우려되더니 마한왕도 상징과 뿌리가 차례로 뽑힌다.

고구려·발해사를 편입하려는 중국 ‘동북공정’이나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 가야에 설치해 200년간 지배했다는 일본 ‘임나일본부설’은 역사왜곡이다. 익산도 근년 무왕의 ‘왕궁성 천도=백제왕도’나 쌍릉 ‘대왕릉=무왕릉’을 주장한다. 역사후퇴로 짜 맞추기 '서남공정(?)'인가? 마한은 실종되고 사택왕후 사리장엄으로 올 1월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도 백제 중심이다.

마한은 '삼한三韓의 하나'로 기원전 1세기부터 AD 6세기 중엽까지 경기·충청·전라에 분포했던 54개국이다. 마한 일부인 백제伯濟가 하북위례성·하남위례성(몽촌토성·풍납토성)을 거쳐 한성(서울)백제百濟(BC18~475)로 발전했고, 웅진(공주)백제(475~538)·사비(부여)백제(538~660)로 남하하며 마한 소국을 차례로 병합했다.

익산 쌍릉(대왕릉·소왕릉)은 무수한 사서에 후後마한 태조 무강왕(기준)과 부인릉으로 기록됐다. 1917년 ‘야쓰이세이치(곡정제일谷井濟一)’가 발굴한 쌍릉은 고려 충숙왕 때 도굴기록이 상세해 목관 등 외에는 별 유물이 없었다. 이때 대왕릉 출토 어금니로 여성이라고 판정해 선화공주나 사택왕후이거나, 소왕릉이 마한 무강왕이나 무왕이라는 주장도 있다. ‘세이치’ 발굴 100주년인 2017년 재 발굴에서 대왕릉 발견 인골이 순장유골인지도 모르는데 정확치 않은 연대측정으로 무왕이라 단정하는 어처구니다. 마한 내궁內宮부터 출발해 백제·통일신라·후삼국 이후까지 활용된 왕궁성은 사료로 인정키 어려운 고(괴)문서 ‘관세음응험기’를 근거로 ‘익산천도(백제왕도)’ 주장이다. ‘신앙 간증’ 응험기 앞13줄과 뒤5줄은 최소 120년 차이가 나 ‘첨부(조작)설’도 나돈다. 뒤5줄 내용도 석연치 않다. 응험기 실물 공개검증이 없는 한 웃음거리다.

익산토성(오금산성=보덕성)에서 ‘수부首府’ 명 기와가 출토될 때, “수도지역 유물로 사비 왕궁 관북리 유적 6점과 부소산성 1점이 출토됐는데 익산토성 수부 명 기와는 왕궁출토 13점과 함께 익산이 백제수도 증거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수부는 ‘중앙정부 소재 도시(수도)’를 뜻하지만 ‘(감영 등이 있던) 주요도시’도 의미해 천도 주장은 성급하다. 전주(충주·공주)도 전라(충청) 수부라 한다. 마한 건마국乾馬國이던 통합 전, 익산군은 ‘마한제’ 축제를 지냈으나, 통합 익산시는 ‘마한관’을 세워놓고도 유물·유적은 서동(무왕)과 연계시키고, ‘서동축제’만 개최한다.

나주시에는 마한부터 일부 백제기 ‘반남면 고분군’으로 2013년 마한 중심 국립나주박물관을 개관했다. 웅진백제 말기 귀족 묘인 반남면 신촌리 9호분 출토 80년만인 1997년 국보 제295호로 지정된 ‘신촌리 금동관’ 등 나주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영산강 지역은 6세기 초·중엽까지 독특한 마한문화를 유지했으며, ‘옹관묘(독널무덤)’는 3-6세기 마한·백제까지 변형되며 이어졌다. 특이한 ‘신촌리 금동관’은 쌍릉을 1917년 발굴한 ‘세이치’에 의해 그 해 12월 ‘금동신발’과 함께 출토됐다. 익산 '웅포 입점리고분' 금동관모·금동신발과 시대가 같다.
 
반남고분군은 고대인 명당 터인 ‘자미산’이 동서로 나눈 반남면에 산재했다. 자미산 서쪽 대안리고분군·동쪽 덕산리고분군·신촌리고분군은 도굴·훼손으로 줄었으나 경주 왕릉 이상 크고 잘 보존됐다. 부여·공주 등 전투지역과 멀고 북방 외적이나 왜구 침탈도 동떨어져 독특한 마한문화를 형성했고 보존도 잘됐다. 벌명당 ‘반남박씨’ 시조묘도 지척이다. ‘마한고도 반남’이라는 표지석이 면사무소에 있고, 지역농협은 아예 ‘마한농협’이다. 나주시 다시면에는 옹관·금동신발·은제관식 등이 출토된 마한·백제 복암리고분군으로 전시관도 세워졌다.

익산 역사성을 살리고 마한까지 역사를 확대하려면 ‘마한교육문화회관’ 명칭은 물론 ‘마한왕도’를 확고히 고수·정립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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