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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문태준의 ‘백년(百年)’ 해설

  • 입력 2020.08.1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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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百年) / 문태준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오늘 우연히 시렁에 쌓인 베개들을 올려보았네

연지처럼 붉은 실로 꼼꼼하게 바느질해놓은 百年이라는 글씨

 

百年을 함께 베고 살다 간 사랑은 누구였을까

병이 오고, 끙끙 앓고, 붉은 알몸으로도 뜨겁게 껴안자던 百年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百年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百年이라는 말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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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어떤 의미에서 인생은 긴 이별의 과정입니다. 탯줄로 연결된 모체와 이별하면서 삶을 시작하고, 종국에는 나 자신과도 이별해야 하는 게 인생이니까요. 아무리 이별이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이별은 뜻하지 않은 대형 사고를 당하는 것만큼이나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나를 망가뜨리고 회복할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기곤 하니까요. 겨우 백년도 함께 하지 못하고 이별할 인연들이라고 생각하면, 이 순간 곁에 있는 이들 중 소중하지 않은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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