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부여 ‘가림성’과 ‘사랑나무’를 아시나요?
[칼럼] 부여 ‘가림성’과 ‘사랑나무’를 아시나요?
  • 고재홍 기자
  • 승인 2021.04.12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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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일보=호남]고재홍 기자=‘가림성加林城과 사랑나무’를 아시나요? 부여 가림성 사랑나무(느티나무) 천연기념물 지정 대상 선정이야기다. 지난해 3월, 부여 유왕산·대조사를 거쳐 ‘성흥산성(가림성)’에서 사랑나무·유금필사당·성흥루와 김종필 글씨·봉화제단을 둘러봤는데 그 느티나무가 천연기념물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백제 충신 ‘성충’이 “기벌포(서천 장암진성)와 탄현(완주 혹은 금산)을 지키라.”고 유언하고 “나라 망하는 꼴 안 본다.”며 단식·사망했고, 직언하다 유배 간 충신 ‘흥수’도 같은 말을 했으나 듣지 않았기 때문인지 백제는 멸망했다. 코로나 창궐로 대면을 꺼리니 이들 지역과 백제부흥운동 유적지 및 신라 경주와 마한의 고장, 나주 반남면 및 김해 등 가야유적지 등을 돌아보는 일환으로 가림성도 둘러봤다. 원래 가림성은 부여 임천면 성흥산에 위치해 성흥산성이라 한다. 금강에서 6km 떨어진 해발 268m 성흥산은 일망무제로 감탄을 자아낸다. 금강 하구부터 익산·논산·부여까지 사방이 시야가 미치지 못함을 탄식할 정도다.

조선시대는 ‘부여·석성·홍산현’과 ‘임천군’이었을 정도로 임천은 부여군 서남부이자 금강 서북부 평야 배산임수 고을로 가장 넓고 물산이 풍부했다. 1895년 행정개편으로 금강 양쪽 ‘부여군’과 금강 동쪽 ‘석성군’ 및 서쪽 ‘홍산군·임천군’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부여군이 됐다.

21대 개로왕(즉위 455-75)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 ‘위례성(한성)’이 함락되고 피살됐다. 아들 문주왕(475-77)이 신라 구원병을 이끌고 왔으나 한성은 불타고 개로왕은 살해된 후였다. 문주왕은 공주 ‘웅진성’으로 천도했다. 한강 남쪽 ‘한성’처럼 차령과 금강 남쪽 ‘웅진’도 고구려를 의식했다. 문주왕은 왕족 부여씨나 해解·진眞 씨 등 부여계 ‘한성 귀족’과 남부 마한계 사沙·연燕 씨 ‘웅진 귀족’ 암투로 병관 좌평 ‘해구’가 보낸 자객에 살해된다.

문주왕 아들 삼근왕(477-79)도 478년 해구가 왕위 찬탈 반란을 일으켜 덕솔 ‘진로’가 평정했으나 이듬해 살해된다. 문주왕 동생(곤지) 아들인 24대 동성왕(479-501)이 즉위했다. 진 씨 세력 등에 의해 옹립된 동성왕은 백           ·사·연 씨 등 웅진귀족을 등용해 한성 귀족과 균형을 꾀하며 왕권강화에 전념했다. 특히 백제를 22개로 나누어 주로 왕족이 담로장(분국왕分國王)으로 통치하는 담로제를 확립했다. 고구려에 대항하러 신라 소지왕과 결혼동맹을 맺어 이찬 ‘비지’ 딸과 결혼한 동성왕도 좌평 백가             加에 피살됐다.

백가(?-502)는 위사좌평으로 501년 8월, 가림성으로 발령 받았으나 병을 핑계로 부임하지 않았다. 동성왕이 강제 부임시키자 앙심을 품었다. 사냥을 좋아하는 동성왕은 그 해 11월 가림성 서남쪽까지 사냥을 나갔다. 학계는 강폭이 좁고 북쪽이 평탄한 웅진성 대신 강폭이 넓고 험준한 사비성 등으로 천도를 꾀하려 지형을 알아볼 겸, 사냥에 나선 것으로 분석한다. 폭설로 길이 막힌 동성왕은 서천군 한산면(?) 숙소에서 백가 자객에 찔려 다음 달 사망한다. 무령왕(사마왕, 501-23)이 즉위해 항복한 백가를 죽이고 시신을 금강에 버렸다. 1971년 발견된 공주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 주인공이다. 사비 천도는 26대 성왕(523-54) 16년(538) 이뤄졌다.

가림성 남쪽 지척에 백제 승려 ‘겸익’ 꿈에 나타난 큰 새가 앉았던 자리에 관음보살이 출현했고, 성왕이 창건했다는 대조사大鳥寺가 있다. 가림성은 백제부흥군도 잠시 주둔했다. 천혜 요새, 가림성은 후백제 성으로 활용되다 훗날 고려 왕건 휘하 ‘유금필’이 이 곳에서 후백제와 대적하며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한다. 가림성 정상 유금필 장군 사당에서 백성들은 매년 제사를 지내왔다. 성흥루 누각에는 JP 글씨 현판이 있고, 지척에는 봉화제단이 설치됐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 장소로 유명한 4-5백년 사랑나무로 인기가 높아 가림성은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맑은 날에는 전주 모악산과 충남 계룡산 및 서해까지 환히 보인다.

가림성이 “군주 시해→백제 부흥운동→후삼국 전쟁터→사랑나무”로 변모는 무기발달로 성곽이 무용지물이 된데다 그만큼 국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가림성 사랑나무’가 부디 천연기념물이 되기 바라며 코로나 여행지로 추천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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