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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박준의 ‘환절기’ 해설

  • 입력 2021.04.2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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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 박 준

  

  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이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당신 손을 잡고 시장을 세 바퀴나 돌다 보면 살 만해지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내 습관이나 황도를 백도라고 말하는 당신의 착각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 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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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헤어지고 나서야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 성인이 되고 나서야 유년기나 청소년기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알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젊은 날에는 젊음이 보이지 않았고 사랑할 때는 사랑이 보이지 않았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말이지요. 숲 한가운데를 지날 때는 숲을 볼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원리일 것입니다. 봄이 어떠했는지를 알려면 봄이 다 지나가야 가능하다는 건 참 슬픈 일입니다. 아마도 인생이라는 게 망망대해를 떠도는 것과 비슷해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아야만 어떤 곳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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