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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나희덕의 ‘오분간’ 해설

  • 입력 2021.05.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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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간 / 나희덕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 버릴 生,
내가 늘 기다렸던 이 자리에
그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오월, 엄마는 꽃그늘 아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를 기다립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그 5분, 엄마는 생이 다 지나가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서로의 삶을 맞바꾸며 완성되어가는 기다림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꽃잎이 머리 위로 지고 있네요. 아이는 금방 자라서 우리의 곁을 떠나겠지만, 잠시에 불과한 한순간을 영원처럼 간직하며 자신을 기다리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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