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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김태형의 ‘하객들’ 해설

  • 입력 2021.07.29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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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객들 / 김태형

 

개울에서 흰 구름 하나를 끌고 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깊어오자

성난 구름도 밤공기처럼 고요해졌습니다

 

흰 말 잔등 위에 올라타고

요란한 북소리를 밟으며

그녀에게 갑니다

 

물방울에 매달린 소녀들이

결혼식장까지 내 뒤를 따라왔습니다

 

하객들은 살 속까지 깊이 엉겨 붙은 무더위에 지쳐

귀뚜라미와 메뚜기와

눈먼 날벌레가 되어 있습니다

땀에 젖은 춤과 북소리와

수백 가지 음식과 구경꾼들 사이에서 나는

곧 당나귀가 될 것입니다

 

그녀는 저녁노을이 되어 사라진 두 발목을

어디선가 어루만지고 있겠지요

밤이슬에 숨어서 영영 나타나지 않겠지요

흰 구름이 나를 내려놓고 어딘가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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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칠월이 오면 대기 중에 수분이 많아지면서 구름도 살이 오릅니다. 하얗고 몽실몽실한 여름 구름은 목화솜처럼 폭신하게 보이지요.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시인은 재미있는 상상을 했습니다. 개울가의 살 오른 흰 구름에 올라타고 신부를 맞으러 가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구름에 올라탄 신랑 뒤를 소나기가 북소리를 둥둥 울리며 따라가고, 더위에 지친 하객들이 눈먼 날벌레가 되어 땀에 젖은 춤을 추겠지요. 수줍은 신부가 밤이슬에 숨어서 영영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흰 구름이 기다림에 지친 남자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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