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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문성해의 ‘물의 종족’ 해설

  • 입력 2021.08.2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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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종족 / 문성해

 

물만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불러본다

물고기 베고니아 버드나무 여름 들판의 옥수수들

그리고 삼 년 전 태안 바닷가에서 주워온 몽돌 한 개

그것은 물만 주면 반들반들한 정수리를 내게 보여주곤 했지

옛날 옛적 담뱃내 쩐 누런 방에서 죽은 외할머니도

사흘간 물만으로 사시다가 호르륵 날아가 버리셨지

혹서기의 뱁새처럼

 

나도 가끔은 물만으로 살고 싶은 저녁이 있네

물가에 앉아 물가가 주는 노래

물가가 주는 반짝거림만으로 환희에 찰 때

그건 물로만 살게 될 나의 마지막을 미리 체험하는 순간,

 

물만으로 살 수 있는 것들

최후를 사는 것들

느린 보행의 늙은 사마귀

늦여름 오후의 백일홍

저녁이 오기 전 저수지 위에서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것들

 

눈앞의 숲을 자신이 가진 가장 부드러운 움직임들로 마음껏 장식하고는

맑은 물 한 컵을 마주한 요정의 저녁처럼

한가로운 생의 조율이 끝나면

물이 밀려가듯 한 세계가 닫힌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주스……라고 말하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확인한 사회복지사가 빈사 상태의 노인을 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몸도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물에서 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생물은 물만 겨우 마시다가 최후를 맞이하곤 합니다. 그래서 느린 보행의 늙은 사마귀/ 늦여름 오후의 백일홍/ 저녁이 오기 전 저수지 위에서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것들처럼 물만으로 살 수 있는 것들최후를 사는 것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물의 종족들은 한가로운 생의 조율이 끝나면/ 물이 밀려가듯 한 세계를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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