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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한경용의 ‘빈센트를 위한 만찬’ 해설

  • 입력 2021.11.1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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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를 위한 만찬 / 한경용

 

지네를 자른다.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린다.

지하실의 복도는 마디가 있다.

후미진 달이 갇힌 창문이 내 안으로 길쭉하게,

깨진 유리창 속의 기억이 소름끼친다.

지네를 자르듯 잘라 버려야지

긴 손가락으로 질끈질끈 자르듯 묶으니

살아있는 피가 뚝뚝 떨어지며 목도리에 묻는다.

죽어가지 않을 것 같다.

뒤돌아본 내 지하실 복도

지네는 마디로 산다.

나는 죽지 않는 마디가 무섭고 열 개의 손가락이 무섭고

그보다 더 어울려 그려져 잊힌 목도리가 무섭다.

나의 닫힌 창을 열어보곤 언제나 목을 조른다.

목이 긴 해바라기를 바라보다 쏟아진 핏자국의 양귀비

아이리스에 젖어,

데이지 꽃잎으로 몰아쉬던

언덕마다 노을이 채색된다.

수도원의 첨탑 위로 달 조각이 걸리면

까마귀 나는 밀밭풍은 또다시 이글거리는가.

젖은 불빛 아래 카페에서

압생트*로 칵테일한 눈동자의 자화상을 그린다.

내 노오란 집이 떠가는

강물은 마디가 없다.

 

*고흐가 그린 에메랄드 빛깔의 술, 가난한 예술가들이 즐겨 마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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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은 격정적이고 혼란에 가득 차있었습니다. 고흐에게 해바라기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꽃이었습니다. 고흐는 프랑스 남부 아를(Arles)로 거처를 옮기면서 고갱과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 그는 작은 집을 빌려 노란색 페인트를 칠한 후 해바라기 꽃을 그린 그림으로 장식했습니다. 고갱에 대한 열광적인 환영의 의미로 해바라기를 그렸지만, 몇 달 후 그는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를 자르며 발작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고갱과의 동거는 두 달이 채 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시는 고갱과의 이별로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고흐의 내면을 형상화한 시입니다. “지네를 자른다”, “마디가 생긴 복도”, “깨진 유리창등의 표현에서 관계 단절로 인한 고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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