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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읽는 아침] 이경교의 ‘기몽(記夢)’ 해설

  • 입력 2022.01.21 15:02
  • 수정 2022.01.2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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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몽(記夢) / 이경교

 

  출구가 열리자 왈칵, 빛이 밀려든다 캄캄한 실내로 신작로가 뚫린다 빛의 입자들이 꽃가루처럼 부유한다 별빛 부스러기 한 잎을 줍는다 빛의 통로를 따라 해안선이 그어진다 물결 멈춘 지점에 물의 도시가 세워진다

  모든 것은 한순간이다, 저 찰나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도시의 지붕마다 물결 문양이 찍힌다 격자 창틀에
  햇살이 갇혀 격자로 쪼개진다 눈 없는 새들이 날아와
  모서리를 부리로 찍는다

  모든 건 환상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진실이다

  꽃살무늬 창마다 꽃봉투가 꽂혀 있다 저 봉인된 봉투의
  안쪽은 아직도 캄캄한 밤이다 출구가 열리자 왈칵,
  꽃씨들이 쏟아진다 모든 게 어둠 안쪽에서 발아하여
  여문 씨앗들이다

  빛의 궤적을 따라 다시 해안선을 긋자
  멈추었던 물결이 출렁인다

  도시 하나가 세워지거나 지워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 기몽(記夢)은 꿈을 기록한다는 뜻이다. 소동파(蘇東坡) 선생에게 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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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어둠 안쪽에서 발아하여” 지금의 우주가 생겨나기까지 우주의 시간과 비교하면 인간이 지상에 머물다 가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이 시는 “모든 것은 한순간이다, 저 찰나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라는 말과 함께 “빛”이 생겨나고 “해안선이” 그어지고 “도시”가 세워지고 그 도시가 “물결”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과정을 마치 타임 랩스 영상을 보여주듯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건 환상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진실이다”라고 읊조리고 있는 이 작품은 인생도 세상사도 한바탕 꿈을 꾼 것처럼 덧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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