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편지 / 노향림
작은 창문을 돋보기처럼 매단 늙은 우체국을 지나가면 청마가 생각난다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창유리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청마 고층 빌딩들이 라면 상자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는 머나먼 하늘나라 우체국에서 그는 오늘도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고 있을까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라고 우체국 옆 기찻길로 화물열차가 납작하게 기어간다 푯말도 없는 단선 철길이 인생이라는 경적을 울리며 온몸으로 굴러간다 덜커덩거리며 제 갈 길 가는 바퀴 소리에 너는 가슴 아리다고 했지 명도 낮은 누런 햇살 든 반지하에서 너는 통점 문자 박힌 그리움을 시집처럼 펼쳐놓고 있겠다 미처 부치지 못한 푸른 편지를 들고 별들은 창문에 밤늦도록 찰랑이며 떠 있겠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손편지를 쓰는 일이 드물어지면서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에 가는 일도 드물어졌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편지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움이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혈흔 같은 것이니까요. 시인은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창유리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청마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며, “명도 낮은 누런 햇살”이 드는 “반지하에서” “통점” 박힌 “문자”로 “그리움을” 적어내던 시절을 추억합니다. 가슴 깊이 숨겨둔 “부치지 못한 푸른 편지” 한 장을 만지작거리는 밤, 별들이 “밤늦도록” “창문에” “찰랑이며 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