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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권규미의 ‘화양연화’ 해설

  • 입력 2022.06.07 11:55
  • 수정 2022.06.0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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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 권규미

 

  날 선 볏잎들이 아버지의 노래를 들으며 부드러운 제 생각의 깊이를 이루는 동안 어린 나는 산그늘에 누운 바위 할멈에게 책을 읽어 주곤 했네 천연스런 그는 주름진 눈을 한 번도 깜박이지 않고 외로운 내 독서를 마른 호수에 드는 물길같이 잘도 받아 마시었는데 그 천연스러움이 부러워 킁킁 더운 김을 부리며 엉덩이를 문지르는 늙은 암소를 바위도 나도 서로 웃고만 있을 때 산그늘 크단 입 속에 골짜기 통째 잠겨 버리고 심술로 뒤뚱거리는 소를 따라 우쭐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던 저녁들이 있었네 그 간절하고 나지막한 시간의 잎새들이 어스름 깃드는 저녁마다 별처럼 돋아나네 가뭄과 홍수와 햇빛과 바람 속에 그 무심하던 할멈 여전하신지 산그늘 당겼다 놓고 당겼다 놓으며 슬하에 곤줄박이 몇이라도 거두었는지 이슬의 행간을 빌려 편지를 쓰고 싶네 요새는 늙은 책이 나를 읽는 중이라고 쓸쓸한 소식 전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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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아버지는 어린 딸을 데리고 일하러 나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일하시는 동안, 어린 딸은 산그늘에 누워 바위 할멈에게 책을 읽어 주곤했습니다, 해가 지고 산그늘이 내려와 온 마을을 덮으면 어린 딸은 아버지와 함께 종일 고단한 노동에 지친 암소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나이 들어 예전 같지 않은 침침한 눈으로 책을 읽다가 시인은 문득, 그 시절을 생각합니다. “가뭄과 홍수와 햇빛과 바람에도 무심하던바위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묵묵히 가족들을 위해 일하시던 아버지와 겹쳐 보입니다. 누구에게나 세월이 가도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하면 돌덩이를 삼킨 듯 온몸이 무거워지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아마도 시인에게는 아버지가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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