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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승부조작' 구조적 모순 뿌리채 뽑아야

  • 입력 2012.03.0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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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서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프로야구와 프로농구에서도 승부조작이 벌어졌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지난해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 충격이 채 가시기전에 축구와 야구·배구·농구의 4대 프로 스포츠가 승부조작 추문에 휘말린 것이다. 승부조작은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서 승패를 맞히면 걸었던 돈의 2배를 받고, 농구에서 맞붙은 두 팀 가운데 어느 쪽이 '첫 3점슛'에 성공하느냐, 야구에선 '첫 포볼'을 어느 팀이 얻느냐를 맞히면 3~4배를 받는 도박메뉴들이다. 여러 경기를 묶어 경마식으로 베팅하면 수십배를 받기도 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작년 6월 국내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가 1,019개에 달하고 전체 매출액은 12조7,400억원이나 된다고 발표했다. 승부조작을 위한 조직으로 선수를 매수하는 브로커와 돈을 대는 전주(錢主)가 있고, 연예인과 매수한 선수들을 협박하는 조폭까지 동원해 '검은 커넥션'을 구축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21일 교육과학기술부·방송통신위원회·경찰청·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와 8개 스포츠 단체와 합동회의를 열고 ‘공정하고 투명한 스포츠 환경 조성 대책’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보면 선수들은 1년에 4번 승부 조작 예방 교육을 받아야 하며 승부 조작 가담 선수는 영구 제명이나 자격정지 징계를 내리게 돼 있다. 승부 조작에 연루된 구단 역시 퇴출 처분까지 받을 수 있다. 또 내부 고발 포상금을 최대 1억원으로 올리고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승부 조작을 감시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차단하고자 심의 기간을 2, 3주로 당기고 관계기관 합동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불법 사이트에 베팅하는 사람에 대해 최고 징역 5년 또는 5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강화하는 법도 이미 개정됐다.

이번 내용은 승부조작의 온상인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대해서 원천적으로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배제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내부 고발을 유도한다지만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장치도 빠져있으며 세부적인 각론도 없다. 그리고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와 겹치는 부분이 많고 단속·처벌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승부조작이 선수·지도자들의 도덕성과 법의식의 결여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지만, 엘리트스포츠를 둘러싼 구조적 병폐들이 곪아온 점을 먼저 짚어봐야 한다. 프로스포츠에만 승부조작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아마스포츠, 학원 스포츠에서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왔다는 점이다. 체육특기자로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지도자와 학부모 사이에서 학생선수에게 일부러 져주라고 강요하는 비리가 공공연히 거래되어 왔다는 사실들이다. 그동안 소년체전 진출 승부조작이 발각되기도 했으며, 대학 진학을 위한 승부조작을 벌인 쇼트트랙 지도자가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어린 학생선수 시절부터 이러한 승부조작이 강요되고 용인되는 오염된 문화 속에서 자라온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가치관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관련 학생들은 조작수법에 대한 죄의식도 별로 없이 도덕성이 무뎌져 온 것이다. 이런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정치권에서도 돈봉투가 난무하고, 지자체교육 최고 책임관리자인 교육감이 경쟁후보에게 '선의(?)의 돈봉투'를 건네 구속되고 벌금형을 받고서도, 자기 사람들 선심인사로 인해 또 다시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교육현실이다.

이런 잘못된 의식을 조장하는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 그동안 오랜 관행의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학원스포츠에서부터 윤리교육의 강화와 승부조작의 불씨가 되는 체육특기자 제도 등 학원스포츠 제도개선 재검토가 필요하다. 학생들의 경기 성적을 볼모로 한 지도자·학부모·학교의 연결고리와 인맥과 파벌로 서로 밀어주는 먹이사슬이 근절돼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암행감찰제도(Supervisor)'를 도입해서 경기조작 행위를 감시하기 위한 상시 모니터링 체제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프로스포츠계의 ‘선수 최저연봉제 도입 및 연금제도 확대’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 종목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선수 복리 증진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 일부 고액 연봉자를 제외하고 대다수 프로 선수들은 언제 퇴출 당할지 불안과 복지제공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항시 승부조작의 유혹이 도사리게 된다. 대개의 선수들이 비정규직 상태에서 브로커의 유혹과 고질적인 학원 스포츠 구조에 쉽게 노출될 수도 있다.

지난해 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관중이 늘고 있으며, 올해 프로야구는 7백만 관중을 넘어 8백만명까지 목표로 삼고 있다. 프로배구는 해마다 관중이 늘고 있으며 10년 전 150억원 수준의 축구협회 예산은 무려 1,000억원을 상회하고 있다. 승부조작 같은 불상사에도 한국 프로스포츠 시장의 규모는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승부조작과 스포츠 불법도박은 사기극이자 죄질이 아주 나쁜 범죄 행위이다. 운동의 기본 정신은 반칙이나 속임수를 쓰지 않는 페어플레이와 심신단련에 있다. 스포츠는 인격을 연마하는 교육 과정이며 수단이다. 차제에 승부조작 불법 스포츠 도박의 구조를 뿌리채 뽑아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스포츠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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