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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고재홍 기자

<칼럼> ‘고종시’ 열리면 생각나는 ‘종환이 형’

  • 입력 2016.11.1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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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만추晩秋다. 방송에서 국민大가수 나훈아의 ‘홍시’ 노래가 자주 나온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 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 새라.(중략)” 감나무의 홍시를 먹으며 감을 따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차곡차곡 쌓아둔 감이 차례로 빨갛게 물렁거리는 홍시를 꺼내 먹는 맛, 그 맛을 어찌 잊겠는가? 홍시를 꺼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나지 않는 사람도 없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중략)”으로 시작되는 ‘향수’라는 명시를 남긴 정지용鄭芝溶(1902~)도 ‘홍시’라는 시를 남겼다. “어저께도 홍시하나. 오늘에도 홍시하나. 까마귀야. 까마귀야. 우리 남게 왜 앉었나. 우리 오빠 오시걸랑. 맛 뵐라구 남겨 뒀다. 후락 딱 딱 훠이 훠이!” 까마귀밥이던 ‘홍시까지 못 먹게 하는 장면에서 오빠를 그리워하는 절실한 마음과 어려운 현실이 겹친다.


감 익는 계절이면 필자는 완주군 동상면 수만水滿리 ‘다자미多子美’ 마을의 ‘김종환(66)’ 형이 생각난다. 서울에서 내려와 완주담당 기자를 하던 1990년 만났으니 어연 26년째다. 전주 중심에서 직선으로 20km도 안 되나 ‘전국 8대오지’라는 별칭처럼 꾸불거리는 산길로 30여km가 된다. 전라도 관찰사로 풍수에 해박했던 이서구(1754∼1825)가 “장차 물이 가득찰 것이다.”고 예언했다는 수만리는 말 그대로 ‘동상댐이 들어섰다.


다자미 마을은 북으로 흐르는 물길을 막은 동상댐 남쪽 최상류로 접근이 쉽지 않았다. 당시 비포장으로 ’르망 승용차로 위봉산성 아래 오성저수지 앞 경사진 자갈길을 오르다 포기했다. 위봉폭포 앞도 절벽 길이어 위험했다. 가까스로 다가간 다자미 마을은 “아들이 많고 아름답다.”는 말처럼 “짧은 해로 부부관계가 많을 수밖에 없어 아들이 많은 것 아니냐”는 우스개도 있다. 과거 아들을 원하던 부녀자들이 기운을 쐬러 많이 왔단다. 오염원이 전혀 없고 한 여름에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 폭포수처럼 흐르는 곳에서 ‘산골산장을 운영하며 1백~150년 된 고종시高宗 350여 주를 소유해 감과 곶감, 감식초 등을 생산했던 종환이 형은 외교적 수완과 붙임성이 좋아 군청을 오가며 마을일을 도맡아 했다.

일능이 이표고 삼송이라는 말처럼 송이나 표고보다 제일로 친다는 새까만 능이버섯 요리에 술도 마음껏 마셨다. 이 곳 감은 “씨가 없고 일교차가 심한 지형으로 당도가 엄청 높아 고종임금에 진상품으로 올라갔다”고 해 고종시다. 높은 나무에 올라 감을 따 주던 형이다. “내가 뭐라고 엄청 힘들게 감을 따 주나”라는 마음에 그 곳에서 나지 않는 쌀이나 흑미, 유명한 술 등 이것저것 전해주었으나 어찌 피땀 흘린 것에 비하리. 인근에 좋지 않을 일이 있어도 쉬쉬하고 덮던 진짜 선한 형과의 관계는 지금까지 유지된다. 세상이 천지개벽해 포장도 오래 전 끝나 ‘오지 중의 오지였던 형의 가든은 고종시 마실길로 유명하고 여름이면 주차할 수도 없을 정도로 밀리고 주변 땅도 폭등했다. 큰 아들(현대), 작은 아들(중소기업)에 중앙 MBC 직원인 딸과 MBC PD인 사위 등 ’자식농사’를 잘해 걱정도 없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다. 올 가을 다른 것도 아닌 감 15kg 한 박스를 형에게 선물했다. 고종시 350주를 소유한 형에게 말이다. 곳곳에 감이 넘쳐 나는데 정작 형은 수확을 포기했다. 너도나도 감을 심어 05년 4만3085톤이던 전국의 ‘떫은 감’ 생산량이 지난해는 19만5309톤으로 급증한데다 올해는 대풍년이 들었기 때문이다.


1백년이 넘은 고종시는 과거 재배기술 부족과 급경사 지형으로 가지자르기를 안 해 엄청 높은데다 고령화로 감 수확이 쉽지 않고 가격도 폭락해 인건비도 안 나와 수확을 포기한 채 ‘달고 단 고종시’가 통째 ‘까마귀 잔치판’이자 ‘새 먹이‘로 전락했다. 최근 전북도가 포도와 블루베리 피해보전과 폐업지원에 422억을 확정한 것처럼 감 농가도 피해보전 및 폐업지원을 하거나 ‘동상면 고종시는 수종교체 지원으로 가지자르기를 통해 수확이 손쉬운 특산품으로 전환대책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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