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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다섯 개의 계절 / 박진성

  • 입력 2018.05.08 16:57
  • 수정 2018.05.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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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계절  /   박진성

 

    계절이 다섯 개가 있다면 한 계절은 죽어 있어도 된다면 나는 너의 무덤에 있을 거야, 네 번째 계절이 끝나는 곳에 나무를 떨어뜨릴 거야 감정 노동자의 감정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리고 초록이 지겨운 초가을의 나무들을 닫을 수 있다면 다섯 번째, 다섯 번째, 자, 이렇게 시간은 흐른다,

   나무들이 맹목을 버린다면 우릴 쳐다보는 모든 눈동자들이 흰 자위만 남는다면 구름처럼 구름 아래의 구름처럼 아래의 아래의 …… 빙빙 도는 새들이 떨어진다면 아이들이 갑자기 노는 일을 중단한다면 다섯 번째, 다섯 번째 꿈이 시작된다 잠들 수 있다면 쫓기고 있어요, 네 꿈의 창백한 환자가 내 꿈으로 이동한다면 안아줄 텐데
자신이 가여워서 우는 사내를 네가 본다면 없는 죄를 만드는 사내의 입술을 본다면 말의 힘줄과 말의 불안과 말의 꽃들을 네가 밟는다면 다섯 번째 계절엔 병원이 없을 텐데 안녕 지하실들아 모든 시간들이 모이는 바닥들아 네가 그곳에 눕는다면 …… 너의 아래를 기어다닐 수 있다면 시간이 사라질 텐데 날씨가 악기가 될 수 있을 텐데 악기의 북쪽으로만 만든 음악일 텐데 계절이 다섯 개가 있다면

   그렇게 죽어 있어도 좋아 죽은 말들만 모아 일기를 써도 좋아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책을 물고 너의 해안으로 모든 물고기들이 몰려들 텐데 가라앉으리라 가라앉으리라 떨어지는 먼지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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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다섯 개쯤 있다면 한 계절쯤 겨울잠을 자도 좋겠습니다. 구름 아래 구름을 개어두고 죽은 듯 연인의 곁에 누워 창백한 환자로 서로의 꿈을 방문해도 좋겠습니다. 시간으로 기록되지 않는 계절을 나고 나면 “자신이 가여워 우는” 저편의 내가 “북쪽으로만 만든 음악”을 멈추고 먼지처럼 가벼워져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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