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실기(妾室記)
-고경숙
식구면서 가족이 아닌 동거가 시작됐다
음습한 곳에 난 종기처럼
주인영감은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만
그녀를 풀어보았다
침목처럼 누워 바라보는 별빛이
흔들흔들 화물차 몇 량을 보내고
식구면서 가족이 아닌 아이가 태어났다
조용히 숨죽이는 호흡 아래
철로에서 몇 차례 넋을 잃었다
바람에 동승하고 싶었다
슬찌끼미 같은 안채의 내방이
그 집에서 그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명확하게 선 긋고 가는 밤이면
감나무 이파리도 후둑거리며
등짝을 쳤다
서러운 너머의 것들은 모두가 한통속이다
식구면서 가족이 아닌 아이가
분 젖통을 찾아 그녀를 풀던 새벽녘,
영감 대신 화물차 한 량 온몸으로 받으며
침목처럼 그녀가 거기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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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이면서 가족이 아닌 존재”처럼 서러운 게 또 있을까요? 전통사회에서 첩이란 “음습한 곳에 난 종기”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함부로 드러낼 수 없었던 치부였습니다. “식구이면서 가족 아닌 존재”가 역시 축복받지 못하는 존재인 “식구이면서 가족 아닌 아이”를 힘겹게 재생산해내는 풍경은 마음을 쓰리게 합니다. 첩살이는 “조용히 숨죽”인 채 바닥에 엎드려 온몸으로 “화물차”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삶입니다. “첩실”이란 제3자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잉여였겠지만 여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더없는 결핍이었을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어 첩 제도는 사라졌지만, 경쟁에 밀려 세상으로부터 잉여 취급을 받아야 하는 이들의 삶이 과연 첩살이와 얼마나 다를까요? “서러운 너머의 것들은 모두가 한통속이다”라는 시인의 말은 아마도 세상 모든 약자에게 건네는 위로일 것입니다.
- 시인 최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