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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해설

  • 입력 2019.08.0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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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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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스물여덟 해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이 시는 윤동주가 일본에 유학 중이던 1942년 쓴 작품입니다. “육첩방(六疊房)”은 다다미가 6장 깔려있는 일본식 방을 말하는데,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한 단어이자 시인 내면의 무력감을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이 젊은 시인은 온몸을 던져 현실에 저항하지 못하고 언어나 다듬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와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순수한 내면을 가졌던 아름다운 청년 윤동주는 3년 후, 생체실험으로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광복을 불과 몇 달 남겨둔 겨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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