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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이혜미의 ‘눈송이의 감각’ 해설

  • 입력 2019.12.1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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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송이의 감각 / 이혜미

 

 

배관공과 함께한 겨울은 따듯했다.

 

밤이면 벽 너머로 눈들이 자라나고

얼어붙은 나뭇가지를 벽난로에 던져넣으며

나무들이 추운 발가락을 길게 내뻗는 소리를 듣는다.

 

오래된 쇠붙이를 창밖으로 흩어 내버리면

차갑게 물드는 영혼의 팔다리들.

 

버려질 때 가장 아름다워지는 옛 장신구들처럼

희미해지는

겨울의 배관들.

 

너는 내 손목에 귀를 대고

먼 땅에 파묻힌 수관을 불러온다.

 

나는 굳어가는 물방울처럼 이목구비를 잊고

핏줄을 떠올리는 동안 손발이 서서히 꺾여나가고

 

얼어붙지 않기 위해

지속적인 눈물이 필요했다.

 

폭설이 닿는 자리에 회백색의 나무들이 빚어진다.

부러진 손가락을 하나하나 벽난로 속으로 밀어넣으며

우리는 젖은 나무들을 껴안고 타올랐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배관은 어쩌면 겨울의 핏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로 더운 피가 돌지 않는다면 우리는 차가운 방바닥에 누운 채 죽어가겠지요. 우리의 겨울에 따스한 기운을 돌게 하니까 연인은 배관공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바깥세상이 아무리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이라도 그의 피가 도는 곳에서 그 온기에 기대 찬바람이 몰아치는 세상을 견뎌낼 수 있다는 건 황홀한 일입니다. 하지만 버려질 때 가장 아름다워지는 옛 장신구들처럼언젠가는 희미해져야 하는 것이 겨울의 배관들입니다. 사랑의 운명이 그러하듯이……. 그리하여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다시 겨울이 와서 그 온기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면 우리는 먼 땅에 파묻힌 수관을 불러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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