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동을 기억하는가 / 최승자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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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 최승자 시인의 시입니다. 청파동이 어딘가 싶어서 검색해봤더니 소나무 숲으로 유명한 효창공원이 있는 동네였습니다. 원래 이곳에는 푸른 야산이 많아 청파(靑波)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연인들이 꽃잎처럼 포개져 잠들고 눈의 흰 손이 연인들의 잠을 어루만지던 곳, 눈 덮인 꿈속을 헤매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이 있는 곳, 연인의 따뜻한 품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 번 최후로 찔리고 한없이 오래 죽고 싶은, 그곳 청파동……. 잊을 수 없는 겨울을 묻고 온 여러분의 청파동은 어디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