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도 저녁이면 / 강연호
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
괄호 속의 숫자놀이처럼
노을도 생각이 많아 오래 머물고
하릴없이 도랑 막고 물장구치던 아이들
집 찾아 돌아가길 기다려 등불은 켜진다
9월도 저녁이면 습자지에 물감 번지듯
푸른 산그늘 골똘히 머금는 마을
빈집의 돌담은 제 풀에 귀가 빠지고
지난 여름은 어떠했나 살갗의 얼룩 지우며
저무는 일 하나로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밥상 물리고 이부자리를 편다
9월도 저녁이면 삶이란 죽음이란
애매한 그리움이란
손바닥에 하나 더 새겨지는 손금 같은 것
지난 여름은 어떠했나
9월도 저녁이면 죄다 글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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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바람도 쉬엄쉬엄 불어오고, 노을도 생각이 많아지는지 오래 머물렀다 갑니다. “습자지에 물감 번지듯/ 푸른 산그늘”이 번지는 저녁,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 등불을 밝히고, “저무는 일 하나로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밥상 물리고 이부자리를” 폅니다. 가을이 오면 가슴에 묻은 이의 목소리도 짙어져, 기다려도 오지 않을 이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서러워지는 어떤 이름을 다 불러보기도 전에, 창밖으로 후두둑 낙엽이 질까 두려워지는 계절……. 그래서 “저녁이면 죄다 글썽”해지는 계절이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