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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강성은의 ‘환상의 빛’ 해설

  • 입력 2022.02.1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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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 강성은

 

긴 잠에서 깨어난 외할머니가

조용히 매실을 담그고 있다

긴 잠을 자고 있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

 

나는 차를 너무 많이 마셨나

눈물에 휩쓸려 바다까지 떠내려갔나

하루는 거대해지고

하루는 입자처럼 작아져 보이지 않는다

 

아픈 내 배를 천천히 문질러주듯

외할머니가 햇볕에 나를 가지런히 말린다

슬퍼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본 적 없는 신을 사랑해본 적도 있다

본 적 없는 신을 그리워해본 적도 있다

 

그저 외할머니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

긴 겨울을 여행하고 싶었을 뿐인데

 

긴 잠에서 깨어난 내가 눈물을 참는 사이

밤하늘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이 내려오고 있다

 

저 눈이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 셰익스피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살다 보면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화자는 매실을 담그고있는 할머니 곁에 잠들어있던 때를 기억합니다. 햇빛이 잘 드는 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손녀를 바라보는 외할머니. 손녀는 잠결에서도 따스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낮잠에서 깨어난 화자는 따스한 눈길로 자신의 잠든 모습을 봐주시던 외할머니가 계시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저 외할머니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 긴 겨울을 여행하고 싶었을 뿐인데말입니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마음은 더없이 춥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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