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모래알로 이루어져 있나 / 박형준
도시주의 세상에
가을은 노란색 하나로 온다
낙엽 아래서 밟혔다
재빠르게 사라지는 물컹거림 같은 것
먼 데서 습지의 물오리떼가 반짝인다
타인의 발자국 소리에 수줍어하며
갈대숲 사이 물 위로 미끄러져 숨는 물오리떼
날개를 서로 곁에 붙이고
보금자리 만드는 물오리떼
나는 시골주의 사람은 아니지만
가을의 노란색이
냄새와 함께 배어 다가오던 때를 기억한다
가을 논둑 길 걸어 집으로 돌아갈 때
공중에 가만히 멈춰 선 저녁연기를 바라보며
부엌에서 밥을 지으며 기다리는 님의
발자국 소리를 생각하던 그때
가마솥을 들어 올리며 펄펄 끓는 밥물 냄새와
그 아래에서 기다림으로 눌러붙은 누룽지
저녁연기와 저녁노을에서 떠올리며
가을 논둑 길 걸어 집으로 돌아가던 그때
못다 한 말들을 털어놓듯
옆구리에서 서걱거리던 낱알의 노란색
저녁 산책길 옆
피로에 젖은 사람들의 위액이 뿌려놓은 것 같은
해바라기밭
노란 얼굴에서
천국의 모래알들이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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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면, 파란 하늘과 빨간 단풍 그리고 노란 은행잎이 떠오릅니다. 가을을 느끼게 하는 색깔은 많지만, 도시의 가을을 생각하면 온통 노란색으로 덮인 거리가 먼저 떠오릅니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사방에 노란 잎을 흩날리면 삭막한 도시에도 가을이 깊어간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지요. 그러고 보니 노란색을 가진 것들은 참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발자국 소리”에 놀란 “물오리떼”를 숨겨주느라 서걱거리는 “갈대숲”,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가마솥”에 “눌러붙은 누룽지”, 피로에 젖은 이를 위로해주는 “해바라기” 꽃밭 등등…… 아마도 그래서 시인이 천국은 모래알처럼 점점이 박힌 노란색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