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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최형심 시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정지우의 ‘월식’ 해설

  • 입력 2022.11.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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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식 / 정지우

 

  달을 찢을까 지나가는 그림자를 찢을까. 왼쪽과 오른쪽 눈이 마주치듯 그림자와 나는 교차 중이다. 움직일 수 없는 늪이 있었다. 함께 지나가자고 잠깐 깜깜해지자고 토스한 계절. 열매는 입속을 여는 공기처럼 결락의 지점에 닿으려 색을 입는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가락 사이에 걸린 달, 수억 년 밤을 거울에 비춰 낮을 살아가듯 서로를 찢고 들어가야 비로소 나올 수 있다. 난생처음 밤을 보는 낮의 얼굴로 너를 본다. 마음은 숨길 때 아프다. 서로의 눈 속으로 속절없이 사라진 빛은 동굴을 비추며 타들어 간다. 먼 얼굴은 내 얼굴의 뒷면. 한낮의 그늘이 깊어, 구덩이 속에 묻힌 달을 찾지 않을 그림자를 다시 주워 입는다.

  서로 각을 잃어야만 굴러갈 수 있다. 그림자는 누구냐고 묻지 않는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않는다. 어제의 얼굴을 더듬어 가는 것도 사는 일의 초극이다. 절묘하게 어긋난 나를 파묻었던 눈동자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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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최형심 시인

얼마 전에 월식이 있었습니다. 월식은 지구의 그림자 속으로 달이 들어가면서 일시적으로 달이 사라지는 현상입니다. 어떤 일이나 사람에 압도당하게 되면 “늪”에 빠진 듯 꼼짝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약간만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벗어날 수 있는 일인데도 실체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면 그저 “그림자”에 불과한 허상에 매몰되고 맙니다. 이 시는 그 허상을 “찢고” 맞설 용기가 있을 때, 비로소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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